최상현 주필

 
세월호 참사로 우리 모두가 받은 충격은 마음의 외상(外傷)으로, 이른바 트라우마(Trauma)로 오래 남을 것이 틀림없다. 이 역시 개인의 일상과 사회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국가적인 관리가 요청된다.

사고 수습이 길어지면서 국민의 우울증도 심각하다. 이런 마당에 ‘꾼’들의 집요한 정치투쟁화 기도, 사고에 공동 책임을 느껴야 마땅한 지도층 인사들의 남 탓과 책임 떠넘기기, 꼭 이런 때 나서기 좋아하는 일부 인사들의 터무니없는 막말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재난을 당했을 때 절대로 필요한 것은 국민적인 단합이며 지도자들이 정파와 자기편을 떠나 이를 솔선해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희생자 유족들이 다소라도 위로를 받고 국민이 슬픔과 분노의 블랙홀(Blackhole)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론’이 등장해 관심을 끈다. 말이 풍기는 뉘앙스(Nuance)로 보아서는 혁명과 같은 변혁을 가져올 초대형 국가 어젠더(Agenda)로 생각된다. 성격상으로는 국가 백년대계의 작업이다. 따라서 ‘상황’ 논리를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국가 개조’는 민주적 방법으로는 하루아침에 뚝딱 해치울 방법이 없는 장기적이고 지난(至難)한 과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급박한 시국 상황에 쫓기어 일을 서두른다. 기실 그것은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외형적으로 크게 신장한 우리의 현 국력과 체모에 걸맞게 내실을 다지며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이를 세월호 참사에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우리의 각종 제도와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달라져야 하며 우리 모두의 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각성이 일찍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으로 가슴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국가 개조’라는 작업은 초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범위가 너무나 방대하며 그 작업에 접근하기까지 시간이 엄청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르다간 자칫 졸속이나 응급 땜질 또는 미봉책이 나올 염려가 있다. 그것을 피하자면 초점을 가지고 과제의 우선순위 및 완급을 가려서 급한 것은 급한 대로 하면서 순차적으로 처리해나가는 것이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긴 때가 무르익었을 때 일괄 처리가 안 되면 후순위에 밀리는 것은 점차 흐지부지 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처리 방법이야 어떻든 어차피 ‘국가 개조’라는 과업은 비상한 특단의 의지가 수미일관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정부가 내놓을 ‘국가 개조’ 방안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내용이 될 것인지는 목하 국민들이 예의 주시하는 중대사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사람’ 탓이냐, ‘제도’ 탓이냐로 나누어 따져볼 때 아무래도 ‘사람’ 탓이 더 크며 그것이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해 보인다. 선박 운항의 안전과 관련한 제도에서 허술한 부분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는 주로 그 제도에 종사하는 관(官)과 민(民), 즉 ‘사람’들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제도보다 사람의 문제였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초동 조치에서 늑장 대응해 희생 규모를 키운 것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사람’들이 조금만 더 성실하게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었다면 제도의 허술함쯤은 카버(Cover)되고도 남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지 일단은 먼저 제도가 제대로 좋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제도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활약하게 하는 것이 옳은 순서다. 거기에 그들의 책임감과 성실성까지를 기대하는 형편이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된다. 따라서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사람’들의 무사안일과 무책임, 일탈(逸脫)은 없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제도는 좋고 봐야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제도를 집행하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람’이 성실하지 않으면 그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허사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국가 개조 작업의 주안점이 무엇이 될지, 그 범위가 어디에까지 미칠지는 모르지만 바로 이 ‘제도’와 ‘사람’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딜레마(Dilemma)를 어떻게 풀지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잘못이 빚어낸 것이지 결코 현행의 제도로서 막아낼 수 없었던 일이 아니었다.

공무원 출신 낙하산들의 무차별 하방(下放) 취업으로 형성된 ‘관피아(官+Mafia)’가 뭇매를 맞고 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제도이며 관행이다. ‘관피아’는 부처 산하 협회나 조합, 단체 심지어 민간 기업에까지 진출한다. 그들과 전 직장의 옛 동료들과는 서로 보아주고 챙겨주는 유착과 적당주의 편의주의 관계로 맺어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업무가 제도나 어떤 매뉴얼대로 엄정하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피아’의 문제는 제도와 관행의 문제이자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시 본질은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이 더 크다. 따라서 ‘국가 개조’의 과업은 제도의 혁신과 쇄신을 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사람’의 문제에 더 ‘포커스(Focus)’가 두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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