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숙손통이 훈련한 의례 제정을 참관한 한나라 고조는 당장 신하들에게 익히게 하여 정월에 궁중에서 하례를 성대하게 베푼 뒤 흡족하여 오늘 비로소 황제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조는 숙손통에게 공로를 인정하여 의정장관에 임명하였고 금 5백 근을 하사했다. 숙손통은 예를 다해 황제에게 공손히 아뢰었다.

“저의 제자들은 줄곧 저와 함께 지내왔습니다. 이번 의례를 제정한 것도 그들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부디 그들에게 관직을 베풀어 주십시오.”

황제는 그들을 모두 시종으로 삼았다. 숙손통은 궁에서 물러나오자 황금 5백 근 모두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은 성인이시다.”

한나라 9년 숙손통은 태자의 교육 담당관으로 전임했다. 그 뒤 3년 만에 황제는 태자를 바꾸어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숙손통은 곧장 황제를 찾아가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옛날 진(秦)나라 헌공은 태자를 폐하고 총애하던 이희의 아들 혜제를 태자로 세웠습니다. 그 결과 어찌되었습니까? 진나라는 십 년 동안 혼란에 빠졌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뒤 진나라 시황이 살아 있을 때 태자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고가 칙명이라 속이고 막내 아들인 호해를 태자로 세우는 음모를 꾀해서 그 결과 나라가 멸망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폐하께서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지금 태자의 인품은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황후께서는 폐하와 온갖 어려움을 함께해 오신 조강지처입니다. 그런 분을 배신해도 옳다는 말씀입니까? 만일 폐하께서 적자를 폐하시고 후궁의 아들을 태자 세우신다면 그 전에 저를 먼저 처형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다급하여 말했다.

“내 그저 농담으로 해 본 소리였소.”

“이 일은 천하의 대사에 관계되는 일이옵니다. 누구를 태자로 세우느냐는 천하의 근본이므로 그 근본이 흔들린다면 천하도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그 얼마 뒤 고조가 술자리를 베풀었을 때 태자는 장량에 의해서 태자의 빈객으로 동원공, 녹리 선생, 기리계, 하황공(모두가 그 시대의 성인들이었다.)을 뒤에 배석시킨 뒤 고조 앞으로 나간 것이었다.

황제는 그 다음부터는 태자를 바꾸려하는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즉위하여 혜제가 되었다.

어느 날 혜제가 숙손통을 불렀다.

“신하들 중에 의전장관이 될 만한 인물은 역시 그대가 아니고는 안 되겠소.”

그래서 숙손통은 다시 의전장관으로 돌아왔다. 얼마 뒤 그의 손으로 종묘의 의례가 정해졌다. 한나라의 의식 절차는 점차 정비되기에 이르렀다.

혜제는 도읍 구석에 있는 장락궁에 황태후를 찾아가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교통이 막혀 백성들에게 큰 불편을 주었다. 황제는 생각 끝에 복도(2층의 회랑)를 건설하기로 했다.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숙손통이 혜제를 찾아가 의견을 말했다.

“폐하, 무슨 연유로 저런 복도를 만들게 하셨습니까? 폐하께서는 고조의 의관을 매달 한 번씩 침묘에서 고묘(고조의 묘)에 나르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그 길 위로 복도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고묘는 시조를 모신 곳인데 그곳으로 가는 길 위로 뒷날의 황제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까?”

혜제는 잔뜩 겁을 먹었다.

“알았소. 당장 헐어 없애도록 하겠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복도의 건설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로 이제 새삼스럽게 취소하고 헐어 버린다면 폐하께서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결과가 됩니다. 위수의 북쪽에다 또 하나의 고묘를 만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고조의 의관을 그 속에 봉안을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종묘를 각지에 세운다는 것은 훌륭한 효도이므로 좋다고 봅니다.

혜제는 새로운 종묘를 세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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