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 주체로 불생불명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 드러냄

▲ 원불교 인물.

불교(圓佛敎)는 1916년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의 대각과 더불어 개교된 열린 시대의 새 불교로서 신종교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총본산을 두고 있으며, 믿음의 대상은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이며,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을 강령으로 한다.

불교의 현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주창해 각자 직업에 종사하며 교화사업을 한다. 원불교는 불법(佛法)을 주체삼아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세상에 드러내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다. 

◆소태산 대종사

▲ 소태산 대종사.
전라남도 영광 태생의 소태산은 소년시절부터 구도생활을 시작해 26세 때인 1916년 4월 28일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아 원불교를 창립하게 된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지 몇 달 후 40여 명의 신자를 얻었고, 이들 중에서 이재철·이순순·김기천·오창건·박세철·박동국·유건·김광선·송규 등 9명을 표준제자로 선택했다.

소태산은 처음 이들 9명의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운동·영산방언공사·혈인기도(血印祈禱)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기틀을 닦았다.

저축조합운동은 근검저축·허례폐지·미신타파·금주단연·공동단연·공동출역 등의 새생활운동으로 영산방언공사는 소태산의 탄생지인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지금의 백수읍) 길룡리 앞의 갯벌을 막아 농토를 개간한 간척사업이다.

혈인기도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살리기 위한 서천기도(誓天祈禱)이다. 이러한 3가지 교단 창립의 기초작업은 1916~1919년에 이뤄졌는데, 특히 혈인기도는 3.1운동과 거의 같은 시기로 1919년 늦가을 소태산은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봉래정사로 들어가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제정·구상했다.

1924년에 이르러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하고 ‘불법(佛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敎名)으로 교화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이 명칭은 1948년 ‘원불교’라는 정식 교명을 제정할 때까지 사용됐다.

한편, 소태산은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옛 성현들이 깨우친 경지를 알기 위해 불교·유교·도교·그리스도교 등의 여러 경전을 열람했다.

그 중에서 ‘금강경(金剛經)’을 보고 “석가모니불은 성현 중의 성현이요, 발심(發心)으로부터 구도(求道)와 대각(大覺)의 경로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따라서 나의 연원(淵源)을 석가모니불로 정하고 장차 불법(佛法)을 주체로 하여 새 종교를 창립하리라”고 결심했다.

◆원불교의 기본교리

▲ 원불교 경성지부 신축 기념.

원불교는 초기 교단부터 공부와 사업의 병진을 지향해왔다. 특히 원기 9년(1924) ‘불법 연구회’라는 임시교명으로 익산 총부를 정하면서 교서발간, 훈련법, 의례개혁, 체제정비, 산업기관설립 등 새로운 제도와 기관을 일으켜 험난한 시국정세 속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한다.

원불교는 교화, 교육, 자선의 이념을 바탕으로 낮에는 산업기관 에서 근로에 힘쓰고 밤에는 전 대중이 모여 공부와 훈련을 통해 민족갱생 운동을 펼쳤으며, 아울러 생활종교, 대중의 종교를 높이 외치며 민족과 인류의 희망이요, 미래를 여는 정신개벽의 종교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일원(一圓)의 진리라 이름하고, 이 일원의 진리를 ‘O’으로 표현했으며, 원불교에서는 이 ‘O’을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이라고 하며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원불교의 교리는 법신불 일원상에 근원해 불법(佛法)을 주체삼아 한국의 전통사상은 물론 기타 모든 종교의 교리도 원융, 활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원불교 이미지.
일원상의 진리는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어느 것 하나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맑고(空), 밝고(圓), 바르며(正), 우주의 모든 존재는 법신불 일원상의 나타난 모습이다. 그리고 삼라만상은 근본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돕는 은혜의 관계 속에서 생성, 변화한다.

원불교의 교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종지(宗旨)로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신앙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수행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인과보응의 신앙문은 법신불 일원상의 모습인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사은(四恩)에 대한 보은과 평등세계 건설의 방법인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의 사요(四要) 실천으로 평화와 행복의 세계를 가꾸는 요결로서 ‘인생의 요도’라 한다.

‘진공묘유’의 수행문은 법신불 일원상을 닮아가려는 것으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공부인 삼학(三學)과 이를 추진함에 근본이 되는 믿음, 분발, 의문, 정성으로 마장이 되는 불신, 탐욕, 나태, 우치를 물리쳐 부처님의 인격과 권능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를 ‘공부의 요도’라 하며,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를 병진하는 원불교의 교리체계는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사대강령을 표준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을 개척하고자 한다. 

◆원불교 경전 및 용어

▲ 원불교 경전.

원불교의 소의경전은 ‘정전(正典)’ ‘대종경(大宗經)’ ‘정산종사 법어’ ‘불조요경’ 등이다. ‘정전’은 원불교의 기본교리를 밝힌 경전이며, ‘대종경’은 소태산 일대의 언행록, ‘정산종사 법어’는 정산송규의 법문이며, ‘불조요경’은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을 요약한 경전이다.

원불교의 최고 통치자를 종법사라 하고, 최고 결의기관으로 수위단회, 중앙집행기관으로 교정원, 중앙감찰기관으로 감찰원을 두어 교단을 통치하고 있다.

교도들을 훈련·교화시키기 위해 각처에 교당을 두고 있으며, 교당에 주재하는 교화자를 교무(敎務)라 한다.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를 두고 있는데 출가교도를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하여 교단에 헌신봉공하고 있다. 재가 출신과 남녀 권리와 의무에 아무런 차별이 없으며, 중앙총부는 전체교단을 통할하고 있고 교당을 효율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각 교구(敎區)를 두고 있다.

신정절·대각개교절·석존성탄절·법인절 등 4축과 육일대재·명절대재 등 2재가 있어 이를 교단의 기념일로 하고 있다.

◆원불교 활동 및 발전사

원불교 사람들.

일제강점기의 원불교는 국민계몽과 농촌생활향상에 주력했다. 총부 건설 이후 출가수행자들은 총부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교단의 창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봉공했다.

교단 초창기부터 산업부를 창설해 과수원 경영, 야채·약초·묘목 재배, 양계·양돈·양토(養兎) 등의 축산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일제강점기에 총부는 모범마을이 되었고 전국 각처에서 산업부 시찰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43년 6월 1일에 소태산이 53세로 열반하고 수제자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가 후계 종법사가 됐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원불교는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차츰 활기를 찾기 시작했으며, 소태산이 교단의 방향을 교화·교육·자선의 3대사업으로 설정한 데 근거해 교화기관으로 각처에 교당을 설립하고 교육기관으로 원광대학교·원광고등학교·원광여자고등학교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또한 자선기관으로 병원·고아원·양로원·복지관·자선원 등을 설립했으며, 해방직후에는 전재동포구호사업·한글보급운동·고아원경영 등의 건국사업을 전개했다.

1953년에는 제1대 성업봉찬대회를 열어 소태산의 성업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갈 것을 다짐했으며, 1962년 정산이 열반하자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가 후계 종법사가 됐다. 송규는 열반을 앞두고 동원도리(同源島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최후 법문으로 발표해 세계 모든 인류의 대동화합을 제창했다.

이후 대산 종사의 법통은 좌산 이광정(李廣淨, 1936~ ) 종법사가 계승,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해 역대 종법사의 경륜을 이어 인재육성, 체제정비, 경제기반확립, 교서번역, 방송국 설립, 국제교화 등 교단 각 분야의 성숙과 세계적 종교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재가, 출가가 다 함께 맑고 밝고 훈훈한 삶을 나누고 창조할 수 있는 교화, 교육, 자선, 문화 사업의 기반을 견고히 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2009년 현재 제13대 경산 장응철 종법사가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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