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가마꾼이 마님을 태우고 숭례문 앞 포목상거리를 지나고 있다. 그 뒤 몸종은 손에 포선(부채)를 들고 뒤따르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뒷가마꾼은 보행 중 위험성이 많아 보수도 달리 받았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현진 기자
yykim@newscj.com
다른 기사 보기
관련기사
- [100년전 사진] 보수 중인 숭례문 앞 전경(1900년)
- [100년전 사진] 관동대지진 학살, 日자경단 거리 활보(1923년)
- [100년전 사진] 관동대지진 日자경단, 조선인 학살 현장(1923년)
- [100년전 사진] 관동대지진 처참한 학살현장(1923년)
- [100년전 사진] 관동대지진 학살, 정말 일본 자국민인가?(1923년)
- 국립현충원, 일본 가이즈카 향나무 철거한다
- [100년전 사진] 독립문 밖 풍경(1907년)
- [단독] 우리나라 최초 남장여자 안무가 사진공개
- [100년전 사진] 신행길 순간(1900년)
- [100년전 사진] 구한말 결혼식(1903년)
- [100년전 사진] 홍두깨 다듬이질(1910년)
- [100년전 사진] 명당성당 종탑공사(1894년)
- [100년전 사진] 죄수 종로거리 노역(1907년)
- [100년전 사진] 다듬이질(1910년)
- [100년전 사진] 일본의 침략근성(19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