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秦)의 2세 황제 호해에게 학자로서 아부하여 박사로 승진된 숙손통은 그 길로 고향 설 땅으로 도망쳐 버렸다. 여러 번에 걸쳐 주군을 바꾸어 오다가 마지막으로 한나라 고조 유방에게 달라붙었다. 한고조에게 도적떼와 무뢰한들만 추천하자 제자들이 불평을 털어 놓았다. 숙손통은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한 전쟁에 학자들은 쓸모가 없다고 설득했다.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숙손통은 즉위 의식과 칭호를 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한(漢)나라에서는 진나라 때의 번거로운 의식을 없애고 간소화 시켰다. 그 결과 신하들의 기강이 문란해져 술을 마시고는 서로 나라 세우는 데 공을 내세워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끝내 칼로 궁중의 기둥을 후려치는 결과를 빚었다. 황제도 얼굴을 찌푸렸다.

날이 갈수록 그런 일들이 빈번해지자 황제는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적당한 때를 살피고 있던 숙손통이 황제에게 건의했다.

“모름지기 학자는 나라를 세우는 데 구실을 하지 못하지만 국가를 유지시키는 단계에 이르면 상당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노나라 학자들을 물러서 저희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례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귀찮은 일은 아예 하지 마시오.”

“옛날 오황이 제정한 음악조차 하, 은, 주 3대의 왕들도 똑같은 예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모름지기 의례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그때마다의 풍속에 의해 간단해질 수도 있고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 은, 주의 의례는 각기 옛날의 것을 따르면서도 가려서 썼다고 공자가 말했으나 그것은 후대가 전대의 예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옛날의 예와 진나라의 예를 덧붙여 새로운 의례를 정할 생각입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숙손통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숙손통은 노나라로 가서 30여 명의 학자를 초청했다. 그중 두 사람은 거절하며 말했다.

“공이 받들었던 주군은 십여 명에 가깝소. 그때마다
 
주군에게 아첨해서 믿음을 얻고 중용되었소. 오늘날 천하가 겨우 평장되기는 했으나 죽은 자들은 방치되었고, 부상자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악을 제정하려 하고 있구려. 본래 예악은 백 년도 더 덕을 쌓은 다음에 정해야 하는 법이요. 공에게 협력하다니 당치도 않는 소리요. 공은 옛 도리를 거역하고 있소. 어서 빨리 물러가시오. 우리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소.”

“당신들은 정말 시골 선비들이군.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다니.”

숙손통은 결국 30명의 학자들만 데리고 노나라에서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 밖의 궁중의 학자들과 제자 백여 명을 합쳐 교외에 마련한 모의 회의장에서 1개월에 걸쳐 의례에 대한 훈련에 힘썼다. 거의 완성될 무렵에 숙손통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의례에 대한 제정을 마쳤으므로 황제께서 먼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한고조는 의례를 참관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신하들에게 당장 의례를 익히게 하여 정월에 궁중에서 하례를 성대하게 베풀기로 했다.

정월이 되자 의식은 정연하게 잘 진행됐다. 고조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나는 오늘 비로소 황제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숙손통은 그 공로로 의전장관에 임명되고 황금 5백 근을 하사 받았다. 그는 황제에게 예를 갖춘 다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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