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커피

감태준(1947~  )

커피 속에 종이컵 바닥이 어른거린다.
향긋하고 달착지근한 맛에
커피 주는 줄 몰랐구나.
자판기 커피가 일생의 거울인 줄 몰랐구나.
반품 안 되고 리필 안 되는
딱 한 컵의 생애,
마지막 한 모금 삼키고 나면
누구든지, 그냥 빈 종이컵 하나.

[시평]
삶이란 살아가면서 자신을 버려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채워가는 것일까. 때로는 버려가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채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채워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버려가는 것이리라. 마치 다 마시고나면 덩그마니 남는 빈 종이컵 마냥.
삶이란 이렇듯 달착지근한 맛에 줄어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마셔대기만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니 바닥이 어른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마냥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씁쓸하게 거의 다 된 자신의 생을 이렇듯 보게 된다. 그래서 어디 리필이라도 되나 두리번거려도, 리필이 되지 않는 자판기 커피 같은 것이 우리의 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딱 한 컵의 생애, 바닥이 거의 다 드러난 그 삶을 들여다보면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머지않아 구겨져 버려질 일회용 종이컵 신세가 바로 우리들 아니겠는가. 우리 삶이 왠지 쓸쓸해지는 저녁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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