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모후인 순비 엄씨(왼쪽)와 한미산 ‘흥국사 괘불’(오른쪽). 괘불 속 무량수불(가운데)이 손을 길게 내밀어 극락에 왕생할 자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순비 엄씨의 괘불 발원 계기>
구한말 불안한 현실 벗고자 불교 이상향 극락세계 꿈꿔
고종과 왕가 안녕 기원하며 흥국사서 30년간 염불 올려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거는 불화’라는 말에서 유래한 ‘괘불’은 조선시대 야외의식을 위해 제작된 큰 불화를 지칭하는 용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인 오는 5월 6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한미산 흥국사 괘불을 공개한다.

오는 5월 2일부터 10월 26일까지 박물관 서화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열릴 테마전 ‘무량수불, 극락에서 만나다–한미산 흥국사 괘불’은 의식용 괘불 전시의 일환으로, 2006년 청곡사 괘불 공개 이후 석탄일에 맞춰 진행되는 여덟 번째 전시다.

한미산 ‘흥국사 괘불’은 펼쳤을 때 높이가 6m가 넘는 대형 불화다. 큰 화면 안에는 극락세계(極樂世界)의 부처, 무량수불(無量壽佛)과 관음·세지보살, 가섭·아난존자, 그리고 문수·보현보살의 일곱 존상이 있다. 특히 무량수불은 손을 길게 내밀어 극락에 왕생할 자를 맞이하고 있고, 주변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오색구름을 만들어 낸다.

불화의 하단에 있는 화기(畵記, 그림에 관한 기록)는 누가 어떤 연유로 불화를 조성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흥국사 괘불 화기에는 “극락국에 태어나 무량수불을 만나다(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當生極樂國 同見無量壽)”라는 내용이 기록됐다.

흥국사 괘불의 발원자는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있다가 훗날 계비의 지위에 오른 순비 엄씨로 추정된다. 순비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황제와 황태자 내외, 아들 영친왕과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이 불화를 경기도 고양군 흥국사에 봉안했으며, 그림 속 극락에서 무량수불을 만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순비는 왕가의 안녕과 아들 영친왕의 평안을 위해 30년에 달하는 만일(萬日)의 기간에 무량수불, 곧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염불하는 만일염불회를 흥국사에서 시작했다. 순비의 청을 받고 당시 건봉사에서 능엄경과 화엄경을 통달했다는 해송스님이 초청돼 왔고, 매일 1만 번씩 ‘나무 아미타불’을 합송(合誦)하는 만일기도회가 흥국사에서 열렸다.

당시는 역사와 정치적 격변기였던 구한말이었기에 사회적 불안함과 그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 ‘무량수불’을 염불하면서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세계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 영국 맨체스터 지역 생산 인장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괘불 제작은 근대의 대표적인 불화승 경선당 응석(應釋)이 맡았다. 그는 주로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70여 점의 불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발원 불화를 여러 차례 제작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화사였다.

괘불의 바탕천으로는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입산 면본을 사용했다. 개항 후 외국산 수입품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것이 면제품이었다. 흥국사 괘불 역시 왕실발원 불화인 만큼 영국산 수입 면제품을 불화의 바탕 재질로 삼았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테마전시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와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테마전 도록을 함께 간행한다. ‘흥국사 아미타괘불, 어떻게 그렸을까’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되는 괘불이야기는 그림에 내재된 조성배경과 신앙, 그리고 누가 어떻게 그렸는지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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