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중세 봉건 유럽 사회에서 기사들은 영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기사들이 필요 없게 되자 그들은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직장을 잃은 기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들은 녹봉을 주는 영주 대신 귀족이나 부잣집 마님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했다.

칼을 휘두르며 거칠게 살아 온 기사들은 새로운 고객을 상대로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야만 했다. 왕성한 혈기와 용맹 대신 부드러움과 상냥함으로 레이디들을 대해야 했던 것이다. 고객인 여성을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위험에 빠진 여성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달려가 구원해 주어야 했다. 그들은 거친 기사도 대신 부드러운 신사도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음식을 먹고 함부로 뼈를 집어던지거나 아무데나 오줌을 누고 침을 뱉던 기사들은 부드러운 미소와 달콤한 말로 여성 고객들의 환심을 샀다. 지나친 남성성은 여성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고, 다정다감할 뿐 아니라 섬세하게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남자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거친 수염 대신 여성들 뺨칠 정도로 매끈하게 생긴 남자들도 호감을 얻게 되었다. 여성과 아이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기사도 정신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일본에서도 막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칼로 먹고 살던 사무라이들이 할 일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사무라이가 평생직업인 줄 알고 살았던 그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거리로 내몰린 그들은 거리의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직업을 개발했다. 장사를 잘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줄 테니 돈을 내라고 하거나 자릿세를 받아 챙긴 것이다. 사무라이가 야쿠자가 되었고, 그들이 조직화되면서 조직 폭력배, 소위 조폭이 된 것이다.

야쿠자들은 그들의 선배들인 사무라이가 그랬던 것처럼 칼을 놓지 않았다. 칼은 상대를 헤치기 위해서도 쓰였지만 조직의 배신자나 자신의 잘못을 자책할 때도 쓰였다. 사무라이들은 칼로 제 배를 찔러 할복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목을 대신 베어주는 카이샤쿠를 하기도 했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 할복과 카이샤쿠 하는 장면이 무수히 등장한다. 한국의 조폭들이 생선 칼을 휘두르는 것도 야쿠자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같은 중세시대 무사였던 기사와 사무라이의 문화가 하나는 기사도 정신으로, 다른 하나는 조폭 문화로 거듭났다. 타이타닉호 선장이 여성과 아이들을 구조선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배와 함께 생을 마감한 것은 분명 기사도 정신이다. 하지만 저 먼저 탈출한 그들은 조폭보다 못한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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