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최근 언론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거의 무조건 ‘잘하는 일’이라며 박수를 쳐대던 보수언론, 특히 가장 소신있게 정부를 추켜세우던 조선일보가 청와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1일자 신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기자회견 때 ‘세종시 관련 질문 누락 사건’을 거론하며 청와대와 기자들을 싸잡아서 힐난했다.

조선일보는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 그리고 부끄러운 언론’이라는 사설에서 “대통령 회견은 대통령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는 자리인 동시에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물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것이 언론사 기자들의 소임이다. 그러나 청와대 기자들, 바로 한국 언론은 이날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는 회견에 앞서 ‘대통령에게 세종시 관련 질문을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세종시 문제로 G20 회의 유치의 의미가 희석될까봐 걱정한 듯하다”면서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고 해서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물어보아야 할 기자들이 청와대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민 모두가 궁금해 하는 세종시 문제를 대통령에게 단 하나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언론직무의 포기였다.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 언론 속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다음처럼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일화도 소개했다.

“과거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불륜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폴란드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국 기자들은 모든 질문을 르윈스키와의 불륜스캔들에만 집중했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인 것도 아니고 언론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유세계의 언론이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대통령에게 대신 물어야 하는 법이다. 기자회견이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어 강인선 차장의 ‘대통령에게 껄끄러운 질문’이라는 별도 칼럼에서 "대통령은 말하기 껄끄러운 이슈라 해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고, 기자들은 국민이 궁금해 할 질문은 반드시 해줘야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여기 끼어들어 특정질문 자제를 요청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세종시 질문을 원천봉쇄한 청와대를 이처럼 질책한 배경에는 설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가 백 번 타당한 지적이라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화들짝 놀란 한겨레신문도 다음날 곧바로 반성문을 사설형식으로 냈다. 한겨레는 또 별도기사에서 세종시 질문이 빠지게 된 과정을 밝히고 역시 청와대 측과 출입기자단을 동시에 나무랐다.

이번 보도를 보며 필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언론에 대해 보도자제와 고위소식통이라는 식의 익명보도 요구를 다반사로 여기는 이 정부의 청와대에는 우려감이, 청와대의 요구를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수용한 기자단에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을 경우 기자단과 사전에 조율과정을 거치긴 했다. 그러나 홍보수석실은 생방송 시간을 감안해 질문숫자(대개 30분을 가정해 6~7개)만을 정해줬을 뿐 질문내용과 질문자 선정은 기자단 자율에 맡겼었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서서는 이 원칙이 서서히 무너지더니 결국엔 이번 같은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기자단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는 청와대 측의 오만과 청와대의 요청을 수용하는 데 익숙해진 기자단 모두의 책임이 있다.

새삼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 ‘건강한 긴장관계’가 최선이라고 갈파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른다. 청와대와 기자단의 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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