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이일주 교수

엊그제는 평택에 있는 한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공주의 농촌 마을을 찾아와 가을철 자연관찰과 농산물 수확 체험활동을 하였다. 높고 푸른 하늘이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고, 좋은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결이 노란 운동복을 입은 어린이들에게 최상의 자연체험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자연 산천과 농촌 풍경을 살펴보고 점심때가 되자 고구마 밭 옆에서 보리밥에 토속 된장국과 민들레 나물 등으로 식사를 하였는데, 준비해 온 김밥보다도 오히려 체험 농가에서 제공하는 토속 된장과 보리밥을 잘 먹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만 3세에서 5세의 어린이들인데도 기본생활 습관지도가 잘 되었기 때문인지 투정을 부리거나 다투는 아이도 없었다. 집단에서 이탈하거나 우는 아이 없이 조용하면서도 무척 흥미 있게 고구마를 캐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그렇게도 귀엽고,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고구마를 캐는 호미의 끝이 뾰족해서 다소 위험하기도 했지만 언니나 오빠가 동생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어린이들은 밭을 다니면서 농산물을 수확하는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를 보면서 잠시 동안이나마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체험 장소가 어린이집에서 가깝지 않은데도 어린이들을 공주까지 안내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체험농가에서는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법으로 경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래 유기농법이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흔히 ‘땅심’이라고 하는 지기(地氣)로 경작하는 방법을 말한다.

오로지 땅심으로만 농사를 지으니 유기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농산물 경작법보다도 오히려 땅심, 즉 ‘지기’를 높이는 일에 전념하게 마련이다.

체험농가에서도 땅심을 높이는 데 꼭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논에서 나는 볏짚을 모두 썰어 넣고 갈아엎기를 3년 동안이나 했지만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밭에도 매년 자연 퇴비와 거름을 주고 수없이 갈아엎기를 하였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었다고 한다.

농약을 치고 화학비료를 써서 손쉽게 경작하는 농산물이 유기농법으로 경작한 농산물보다 더 크고 잘 생겨서 소비자가 찾는 것을 보고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땅심 높이는 노력을 10년 이상 꾸준히 해 온 결과 지금은 모든 농산물이 없어서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제초제나 살충제를 뿌리고 화학비료를 쓰면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만, 조금 지나면 토양은 다시 황폐해 지고 벌레가 더 많이 생기니까 점점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반해서 지기를 높여서 경작하는 유기농은 지기가 약한 초기에는 농산물이 약해서 벌레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지만 지기가 강해지면 비료를 주는 농산물보다 더 싱싱하고 힘차게 성장하여 사람들의 건강에 가장 좋은 식재료로 탈바꿈하게 된다. 지기를 높여 고부가가치를 지닌 농산물을 경작하는 예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유아교육 방법을 확실하게 시사하고 있다.

유기농의 ‘지기’는 유아교육의 ‘원기(元氣)’와 같다. 유기농이 성공하려면 10년 이상 오로지 땅심 높이기에 전념해야 하듯이 인간교육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별 도움 안 되는 조기교육보다는 원기를 높이는 데 전념해야 한다.

유기농업인이 초기에 농약과 비료를 써서 빛깔과 모양이 좋은 농산물을 경작할 것인지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훗날을 보고 꿋꿋이 유기농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과 같이, 영‧유아기 때부터 서둘러서 일찍 지식이나 특기를 기르는 교육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녀에게 충분하면서도 튼튼한 원기를 길러서 제때(발달단계)에 적합한 교육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비료를 써서 계절보다 훨씬 앞서 모양 좋은 농산물을 경작할 수는 있지만, 그 맛이나 품질에서는 계절에 맞는 농산물을 땅심 높은 토질에서 경작한 유기농산물을 능가할 수 없다. 발달 시기보다 앞서서 가르치려고 하는 유아교육은 온실에서 농부가 선택한 작물에 비료를 주어 속성으로 경작하는 것과도 같아서 장기적으로 보면 효과가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발달 초기에는 다른 어린이에게 다소 뒤떨어지는 것 같지만 점진적이면서도 스스로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원기가 강한 적합성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 생명을 지키려는 사명감 있는 유기농업인과도 같이 자녀교육에 올곧은 신념을 지닌 용기 있는 부모들이 줄을 잇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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