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로봇연구부 공학박사 조영조

지난달 국제학술회의 일로 일본에 갔다가 도쿄 가와사키시에 있는 도시바 과학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저 도시바의 현재 제품들을 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가 보았는데, 웬걸 도시바 창업자관에 안내되어 들어간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도시바는 1875년에 창업된 130여년 전통의 기업이었고, 창업자인 히사시게 타나카는 젊은시절 무수한 기계장치를 발명하였으며, 발명품들의 실용화를 위해 76세에 도시바를 창업했다는 것이다. 그 기계장치들 중의 백미는 ‘카라쿠리 인형’이라는 톱니바퀴와 태엽으로 만든 움직이는 자동인형이었다.

전시관에서 직접 시연해 보인 것은 1840년경에 만든 녹차 나르는 인형이었는데, 태엽을 감고 쟁반에 찻잔을 놓으면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여 손님 앞으로 간다. 손님이 찻잔을 들면 멈추어 서 있다가, 다 마신 찻잔을 다시 놓으면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다른 한 쪽에 놓여있던 인형은 붓을 들어 글씨를 쓰는 인형과 활을 통에서 뽑아 과녁을 향해 조준해 쏘는 인형이었는데, 그 동작이 너무 부드럽고 정교하였다. 무려 170여년전에 지금 로봇이 모터를 움직여 복잡하게 하는 일을 그렇게 쉽사리 할 수 있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본은 16세기 중반 서양에서 총과 시계를 도입한 이래, 에도시대(1603~1867)에는 신기한 서양물건을 분해하고 연구하여 실생활에 어울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 많이 나타났다. 사회 분위기도 이들을 존중해 주었고, 장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연구하여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 내어, 과학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1900년대 초 일본의 산업근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인이라면 아름다운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예공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유교의 사농공상 의식이 팽배해서 가장 천한 신분으로 대우를 받다보니 장인정신의 대물림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이 신분질서가 무너져 왔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기술을 천시하는 의식은 남아있는 듯하다.

장인정신은 현대적 의미에서 많은 부분 과학기술 탐구정신으로 바꾸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카라쿠리 인형을 향한 장인정신은 로봇 최강국 일본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제품 소니의 워크맨과 닌텐도 게임기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나 기술의 보급 발전이 잘 안되었던 것은 장인에 대한 냉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일본은 1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나 한국은 한 명도 없다. 2008년 영국대학평가기관 QS의 과학기술분야 세계대학 평가순위에 따르면, 100위내에 일본은 9위 도쿄대를 포함한 5개 대학이 들어 있으나 한국은 34위 KAIST와 43위 서울대 등 2개뿐이다. 현재 일본의 내각에는 하토야마 총리를 포함해 이공계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으나, 우리나라 내각에는 단 한 명의 이공계 출신도 없다. 이는 아직 현대의 장인인 과학기술자에 대한 저평가의 반증이다.

일본 카라쿠리 인형의 민첩한 동작을 바라보며, 현재의 과학기술과 경제 강국 일본을 만들어낸 장인정신을 새삼 떠올렸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일본을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일본이 부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