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승연 기자] 오랜 기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삼성전자가 백혈병 산업재해 논란과 관련해 4년 만에 입을 뗐다. 몇 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사망자 가족 등과 진행해온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조만간 내놓겠다는 것.

14일 김준식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사옥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브리핑을 열고 ‘반도체 백혈병 가족 측 제안에 대한 삼성전자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을 전했다.

이날 간담회를 자청한 김 부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직원의 가족과 반올림, 정의당 심상정 의원 측에서 제안한 사과와 보상안 마련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며 “경영진이 이른 시일 내에 공식 입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삼성전자가 백혈병 산업재해 논란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 결과와 보상대책 등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식 브리핑을 한 것 역시 지난 2010년 4월 15일 기흥사업장에서 ‘반도체 제조공정 설명회’를 한 이후 4년 만이다.

삼성전자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업계와 유족 측 등은 구체적이고 진전된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올해 초에도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은 보상과 관련해 협상을 시도했지만 양측의 의견충돌로 협상에 실패했다.

이날 김 부사장은 “(이번 기자회견은) 심 의원 측에서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와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한 보상안 마련 등에 관한 제안을 해준 데 대한 화답의 차원”이라며 “삼성전자는 11일 제안서를 접수했고 이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혈병 문제에 대해) 빨리 해결하려는 게 근본적인 입장”이라며 “날짜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빨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여러 채널을 통해 (반올림 측과) 만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조사결과도 발표했다”며 “그간 보상대책 보도자료와 블로그를 통해서도 알린 적이 있다”고 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백혈병 근로자들의 사망 원인이 삼성전자 반도체에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확답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오늘 삼성전자 측의 발표에 대해 정의당은 입장자료를 내고 “늦었지만 환영의 뜻을 표한다”며 “오늘 발표가 수많은 피해자와 유족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와 실질적인 보상, 재발방지책으로 이어질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9일 심상정 원내대표는 최초로 백혈병 문제가 제기된 지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삼성 측이 어떠한 사과와 보상도 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심 원내대표는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할 것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를 구성하고 여기서 마련한 합당한 방안에 따라 보상할 것, 제3의 기관을 통해 삼성반도체의 종합진단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백혈병 문제는 삼성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2007년 3월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황 씨 부친은 그해 6월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결국 산업재해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 사이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가 발족됐고 이듬해 4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4명이 집단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등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신청과 행정소송 등이 계속됐다.

그간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의 위험물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건강연구소를 설립했다. 또한 2011년에는 퇴직 후 암으로 투병하는 반도체․LCD 임직원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사내 기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도체 백혈병 논란이 끊이지 않자, 2012년 12월에는 반올림 측에 대화의사를 밝히고 협상을 진행해왔으며 올해 초에도 협상을 시도한 바 있다. 이후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 등이 개봉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지난 9일 심상정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직업병 피해자 및 유족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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