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말고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청량산 입구 큰 돌에 새긴 ‘청량산가’

‘청량산인’이라는 호를 지을 만큼 청량산을 좋아한 퇴계 이황. 청량산의 절경을 자기만 알고 간직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내비쳤다.

선인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있는 청량산은 거칠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호젓한 산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옛사람들은 ‘등산(登山)’보다 ‘유산(遊山)’을 했다. 산을 수직적인 관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바라봤다. 남명 조식이 지리산을 열두 번 찾고, 퇴계 이황이 청량을 수없이 찾은 이유도 그러하다. 정복의 개념이었다면 한 번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고두고 찾은 이유는 산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달콤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 김지윤 기자, 사진촬영/편집: 김미라 기자)
 

▲ 퇴계 이황이 사랑한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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