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우리에겐 뼛속 깊게 힘센 나라를 우러러 받들고 섬기는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사대주의가 뼛속 깊게 박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상품도 그 이름을 우리 말글로 적으면 잘 팔리지 않아도 남의 말글로 이름을 붙이면 더 비싸게 잘 팔린다.

‘누드’란 영어가 ‘나체’란 한자 말보다 더 고급 말이고 ‘나체’란 한자 말은 ‘알몸’이란 토박이말보다 더 고급 말로 여기는 이가 많다. 이런 남의 말 섬기기 흐름은 우리말을 홀로서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난날 내가 어렸던 50년대만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한자 말을 일부러 쓰는 이들이 있었다. 이른바 “문자를 쓴다”는 것이었는데 자기도 남도 잘 모르는 한자 말을 쓰고 어깨를 으스대며 잘난 체했다. 그걸 보는 사람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봤었다. 또 60년대만 해도 미국에 열흘만 여행을 갔다 와도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바로 보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고 웃기는 모습이다.

어쩌다 우리가 제 말글은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글을 더 섬기게 되었을까? 지난 수천 년 동안 힘센 나라의 문화와 말글에 눌려 살다 보니 그런 버릇이 저도 모르게 든 거 같다. 멀리 통일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1500여 년 동안 중국 문화와 한문 속에 살았고 공문서와 배움 책이 한문이었다. 일본 식민지 때엔 일본말이 공식 언어였다. 그래서 한문이나 일본말 같은 남의 말을 많이 알면 출세하고 잘 살 수 있었다.

신라 지증왕 때에 ‘왕’이란 중국 부름말을 처음 썼다고 한다. 그전에 ‘거서간’ ‘마립간’ ‘차차웅’처럼 우리식으로 우두머리를 불렀다. 그 뒤 땅이름, 관직 직제와 땅 이름, 사람 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바꾸고, 복식이나 제례의식까지 중국 당나라식으로 바꿨는데 그 흐름이 조선시대까지 1500년 동안 내려왔다. 이 일은 우리 말글 독립을 방해했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자주 문화를 꽃피지 못하게 한 엄청난 재앙이고 수난이었다.

이렇게 남의 말을 제 말보다 더 섬기는 언어사대주의는 말글살이만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국방, 문화, 교육들 여러 쪽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남의 말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힘센 나라 것이라면 모두 섬기고 제 것은 우습게 여긴다.

이제 간신히 중국 한문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데 영어 섬기기로 바뀌고 있다. 지나친 영어 편식 교육으로 다른 교육은 제대로 안 되고 애들은 정신과 몸이 병들고 약해지고 있다. 회사 이름, 건물이름, 상품 이름을 영어로 바꾸더니 사람 이름과 정부 기관 직제까지 영어로 바꾸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들까지 나오고 있다.

통일 신라가 당나라의 언어 식민지가 되던 때와 똑 닮았다. 일본이 우리 말글을 죽이고 우리 겨레 뿌리를 뽑아 영원한 제 식민지로 만들려고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일본식 이름으로 바꿈)하게 한 것을 탓하면서 오늘날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있다. 그 겨레의 말은 그 겨레 얼이고 정신이다.

앞서 가는 나라, 선진국이 되려면 남의 말글이나 섬기고 제 것을 우습게 여기면 얼빠진 나라가 된다. 이제 잘못된 남의 말 섬기기 버릇을 버리자. 그래야 우리말이 홀로서고 나라도 진짜 독립국이 되고 선진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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