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동네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요즘 같이 꽃피는 계절이면 생각나는 노래다. 요즘 아이들은 잘 부르지도 않고 노랫말도 실감이 잘 나지 않겠지만, 나이 든 세대들은 이 노랫가락만 들어도 콧날이 시큰해진다. 노래도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요즘 세대들은 이런 노래가 하품 난다 할 것이다.

세월도 많이 좋아졌다. 요즘은 가로수나 하천변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있어 멀리 나가지 않고도 꽃구경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진해나 여의도 같은 명소가 있긴 하지만 꽃구경 나섰다가 사람에 치여 고생길 되기 십상이다. 꽃을 보기도 전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꽃피는 계절이니 봐 주자.

벚꽃이 절정이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라 해서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다. 일본 국화는 가을에 피는 국화(菊花)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벚꽃 중에서도 최고로 아름다운 왕벚꽃을 피우는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다. 6세기경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우리 꽃을 우리 꽃이라 부르지 못하고 쓸데없이 속을 태웠던 셈이다.

미국 워싱턴 DC도 벚꽃으로 유명하다. 포토맥 강가에 심어진 3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움으로써 축제가 열리고 시민들이 벚꽃의 향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 벚나무들도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다. 1912년 일본의 도쿄시에서 미일 양국 우호를 위해 보낸 것이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 시민들이 베어 없애려 하자 이승만 박사가 ‘벚꽃은 한국의 제주도가 원산지’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살아남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승만 박사가 잘 한 짓인지는, 글쎄다. 미국 시민들이 눈처럼 쏟아지는 그 꽃잎들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허망한 환상을 품지는 않을지.

조금 있으면 모란이 핀다.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고 했다. 모란이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이고, 모란이 지고나면 봄이 가버려, 시인은 ‘모란이 지고나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마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하였다.

벌써부터 꽃 떨어질 걱정에 한숨짓는 사람이라면 쓸데없이 감상적인 사람이다. 꽃처럼 내 인생이 눈부시지 않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제 시작이다. 서리가 내리고 잎들이 장렬하게 떨어져 내릴 때까지 꽃들은 쉼 없이 필 것이고 우리 인생도 덩달아 피어날 것이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 ‘봄’에서 이렇게 적었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사십 번이나 봄을 맞은 사람도, 사십 번이나 맞을 봄이 더 남은 사람도, 다 축복이고 다행이다. 꽃 피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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