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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목회와 신학)

20~30대 목회자 이중직 찬성률 85%… 20대 92.3%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신학을 하면 예수 팔아먹고 사는 놈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게 삶의 좌우명이 됐다. 목사가 되더라도 부자가 되지 말아야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야지 (중략) 매년 교회 결산은 삼백만 원이 조금 넘는다. (중략) 조그마한 교회의 헌금은 목회자 월 사례비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교인들의 십일조에 신경이 쓰였고, 그러한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 목사가 영업용 택시 운전사라. 참 힘든 결정이었다. 교회에 사전 양해를 구하고 사례비도 일체 받지 않기로 했다. - 안병길 목사의 ‘나는 택시 운전하는 목사’ 중 -

교회에서 지불하는 사례비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벼랑에 몰린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택하고 있다. 소위 ‘투잡(two job)’으로 불리는 이중직은 한국교회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 사이에 피할 수없는 방편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목회자들의 인식조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회 목회자 4명 중 3명은 이중직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30대 목회자들의 이중직에 대한 찬성률은 평균 85%를 육박했다.

기독교월간잡지 ‘목회와신학’은 창립 25주년을 맞아 목회자 9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의식 및 실태조사’ 결과를 4월호에 게재했다. 그 결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 찬성하는 응답이 전체 중 73.9%로 나타났다. 반대는 26.1%에 그쳤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찬성률은 높았다. 20대는 92.3%로 대다수가 찬성했고, 30대 77.6%, 50대 69.4%, 60대 60% 순을 보였다.

이중직을 갖게 하는 요인에는 사례비가 큰 영향을 끼쳤다. 사례비가 80만 원 미만인 목회자의 이중직 참여 비율은 62.7%였다. 80만∼120만 원은 40.2%, 120만∼180만 원은 27%의 분포를 보였다.

조성돈 실천신학대 교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 수준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 목회에 전념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대다수는 풍족한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이중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 사례비로 180만 원 미만을 받는 목회자는 전체의 66.7%(196명)에 달했다. 이는 대다수가 올해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4인 가족 기준 월 최저생계비인 163만 원에 못 미치거나 약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80~250만 원을 받는 목회자는 18.9%(171명)에 그쳤다. 80만 원 미만을 받는 목회자는 16.0%(145명)로 조사됐다. 아예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목회자도 15.0%(136명)나 됐다.

▲ 월간잡지 ‘목회와신학’ 4월호에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가 실렸다. (사진출처: 목회와신학 4월호 표지)
대법원이 개인파산규정에 따라 빚을 갚을 때 최소 4인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최소 금액인 244만 원을 목회자의 사례비에 적용하면 이에 못 미치는 목회자가 전체 중 85.6%이다.

월 사례비가 부족해 교회 사역 외에 다른 일을 하는 목회자 수도 많았다. 응답자의 37.9%(343명)는 사역 외에 다른 경제적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69.8%(233명)는 생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일을 한다고 응답했다.

목회자들의 이중직 일자리는 신학교 교수 및 학원 강사 등 교육 분야가 31.6%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아르바이트(일용직 포함) 19.5%, 사회복지분야 9.0% 등이 이어졌다.

이에 따른 이중직 목회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목회사역 시간이 부족하다(48.6%)’ 였다. 아울러 ‘목회자로서 정체성 혼란을 느낀다(14.1%)’ ‘교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9.9%)’ 등을 호소했다.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다’는 응답은 27.4%가 나왔다.

목회자들은 목회사역에 집중해야 할 시간을 이중직에 빼앗기면서도 불가피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과 이승구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와 같은 목회자들의 현실에 대해 “최선의 목회 형태는 모든 시간을 목회를 위해 바치는 형태의 목회”라면서도 “공동체가 매우 연약해서 목회자의 삶을 충분히 지지하지 못할 때는 목회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지지 방도를 일부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목회자연합 Young2080은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목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많은 목회자들은 먼저 장소를 구하고 교회 간판을 거는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도들이 안 모이니 월세를 못 내고, 보증금에서 야금야금 까먹다가, 다 까먹으면 목회를 접는, 소명이 다해 목회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보증금이 다해 목회를 못하게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예장 통합 총회교회자립위원회는 지난해 5월 제97회기 ‘자립대상교회 목회자 선교대회’를 개최하고 전국 각 지역의 미자립 교회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동부제일교회 임은빈 목사는 “목회자의 이중직을 현실적으로 적용해 자비량 목회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에 대한 방안으로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경제활동 ▲목회자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 ▲일반적인 생활방편을 갖는 것 등이 연구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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