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분명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다. 이 선언의 실천 여부에 따라 우리 민족은 통일을 앞당겨 오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에 반발해 방사포, 단거리 로켓, 스커드·노동미사일 등을 무더기로 발사하면서 남북 대화의 맥이 끊긴 상황에서 국면 전환의 계기는 쉽게 마련되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일단 박 대통령의 제안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이 당장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장성택 제거 후 북한의 정책결정 시스템은 너무 느슨해진 상태다. 적어도 새로운 정책시스템이 복원되려면 김여정 등 신진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확보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귀국함에 따라 대북 3대제안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위한 관련 부처 간 협의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정부 내 협의 절차를 거쳐 그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면 대북 조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민간 전문가 사이에서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조만간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개최해 대통령의 구상을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구체적 대북 접촉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먼저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할 가능성에 대해 정부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다만 회담을 선(先) 제의하는 문제 등은 대화 여건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남북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가 접촉을 제의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먼저 고위급접촉을 제의할 가능성은 일단 낮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가 이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양대 핵심 요소인 북핵 및 천안함 피격사건 책임 규명 문제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는 현실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북핵 논의가 정체되고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제재가 지속하는 가운데 대북제안의 구상을 현실화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역시 관건은 북한의 호응 여부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비핵화 사전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한미일 3국의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있고, 남북관계도 최근 점점 더 경색 국면으로 끌고 가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번 연설에 금강산 관광 재개 시사 등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가시적인 선물 보따리가 없었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미군사훈련인 독수리연습이 끝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마무리되는 다음 달 말은 지나야 북한도 나름의 계산을 끝내고 어떤 식으로든 본격적인 반응을 내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무게를 얻고 있다. 또 북한 역시 다음달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를 열어 김정은 정권을 출범시키고 나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일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통일대박의 식탁 위에 푸짐한 메뉴를 올리고 북한에게 동석을 청하였다. 북한이 선뜻 “감사합니다” 하면서 숟가락을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그 메뉴 중에 좀 더 북한을 유인하고 동석할 수 있도록 하는 매력적인 음식이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박근혜 대통령 역시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가야 할 통일의 길, 북한도 이제 결단을 내려 ‘서울-평양선언’을 채택하는 과단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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