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드라마 ‘기황후’가 인기다. 이 드라마는 고려의 공녀로 끌려갔으나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여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드라마적 재미에 더 비중을 둔 터라 때로는 황당한 설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큰 허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제 드라마에서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촌스럽다고 할 정도다. 대세는 사실보다는 재미다.

실제 기황후도 드라마 속 주인공인 하지원처럼 예뻤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기황후가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실에 들어갔을 때,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을 통해 막 황제가 된 순제는 겨우 14세였다. 어린 그였지만 기황후를 보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순제 역시 고려에 귀양을 간 적이 있어 고려 여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쁜 외모에 마음이 끌렸을 가능성이 높다.

원나라 역사서인 원사(元史) ‘후비열전’에는 “순제를 모시면서 비(기황후)의 천성이 총명해 갈수록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기황후가 예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는 총명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순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 하지원처럼 활을 잘 쏘고 칼을 귀신처럼 쓰면서 남자 몇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무예의 달인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드라마에는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당시 고려 백성들은 공녀 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공녀(貢女)는 말 그대로 여자 공물이라는 뜻으로 여자를 인격체가 아니라 물건 취급한 것이다. 1274년 원종 15년에 처음 140명의 공녀를 보낸 고려는 결혼도감이란 관청까지 두고서 공녀를 뽑아 보냈다. 이후 80여 년간 50여 차례에 걸쳐 공녀를 보냈고, 원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인간들이 밤마다 여자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렸다.
공녀 때문에 개인의 삶은 물론 집안이 무너지고 나라가 흔들렸다. 백성의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혔고 공녀에 뽑히지 않기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을 시키는 조혼풍습도 이 때 생겨났다. 공녀로 인해 전국 산천이 피멍이 들었다.

이곡이라는 사람은 원나라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공녀로 뽑히면 부모와 친척들이 서로 한곳에 모여 곡을 하는데, 밤낮으로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공녀로 나라 밖으로 떠나보내는 날이 되면, 부모와 친척들이 옷자락을 부여잡고 끌어당기다가 난간이나 길바닥에 엎어져버립니다. 비통하고 원통하여 울부짖다가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근심 걱정으로 기절하는 사람도 있고, 피눈물을 흘리며 눈이 멀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드라마는 흥미진진하지만, 역사는 뼈를 깎는 아픔이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도, 재미도 좋지만 이왕이면 아픈 역사도 일깨워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편한 나머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볼 일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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