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고요를 이끌고

허형만(1945~ )

절집의 백구 한 마리
도가 텄는지
무심하기가 부처보다 가벼워 보인다
온종일 듣는 불경도 이골이 난 듯
삼신각 지키던 배롱나무도
집착 한 숭어리 허공에 슬쩍 던져놓는다
소리마저 숨죽인 시간,
저만치 고요가 고요를 이끌고
난출난출 숲길을 내려오고 있다

[시평]
‘고요’란 일컫는바 ‘속(俗)’을 떠난 곳에 ‘고요’가 있는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은 ‘고요’란 마음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절집이 깊은 산중에 있어도, 스님이라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그래서 백구도 함께 살고 있고, 배롱나무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살고 개도 살고, 나무들도 살고 있는데, 유독 절집이라 ‘고요’가 있는 듯하다는 것은, 절집이기 때문에 ‘고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절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고요’가 있다고 믿는 것이리라.
‘고요’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자만이 고요를 고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백구도 도가 터 부처보다 더 가벼워 보이고’ ‘배롱나무도 집착 한 숭어리 허공에 슬쩍 던져놓은 듯’. 그래서 ‘저만치 고요가 고요를 이끌고 난출난출 숲길을 내려오고 있는’ 그 ‘고요’를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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