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구각을 벗겨내고 ‘새정치’의 맑고 깨끗한 색깔을 입히려던 안철수 공동위원장이 요즘 난관에 처해있다. 기대만큼 신당 창당의 효과가 크지 않을 뿐더러 ‘새정치’의 철학을 담보할 정강정책을 놓고서도 적잖은 반발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15 남북공동선언’ 등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던 터에 정강정책 초안을 담당하고 있는 이계안 전 의원이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철수 위원장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민주당 이미지로는 앞으로 신당 지지율 제고나 지방선거 돌파도 어렵다. 낡고 구태의연한 민주당 색깔을 지우지 못한다면 다시 ‘도로 민주당’이란 말을 듣기 일쑤일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을 택한 안철수 위원장의 결단마저 초라하게 평가되고 말 것이다. ‘새정치’가 아니라 구태정치에 굴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더러 차기 총선이나 대선 가도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것과 다름없다. 안 위원장은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정강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 기존의 민주당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그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기존의 민주당에는 취해야 할 정책은 많고, 버려야 할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15 남북공동선언’ 등은 민주당만의 것이 아니다. 민주화를 이뤄낸 시민들, 남북 협력체제를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것이다. 굳이 그런 성과마저 삭제 논란에 휩싸이게 한 것은 전략적 오판이다. 기존의 성과 위에 ‘새정치’의 비전과 그 알맹이를 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옳다.

신당에서 안철수 위원장의 세력은 미미하고 뿌리도 취약하다. 따라서 지금은 더 넓게, 더 깊게 뿌리를 다지고 굵은 줄기를 키워 나가야 할 단계이지 기존의 좋은 토양마저 파헤치는 것은 과잉이다. 눈앞에 있는 산등성이만 보지 말고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바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역량이요, 대선을 염두에 둔 큰 정치인의 행보다. 시작부터 불필요한 소모전은 백해무익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안 위원장에게 지금은 치열한 드라이브와 치밀한 전략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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