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봄이 되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든다. 꽃소식과 함께 여기저서기 청첩장이 날아든다. 결혼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신부는 아름답고 신랑은 늠름하다. 웨딩마치는 가슴을 울리고 사랑의 축가는 눈시울을 적신다. 축복을 받는 이도 축복을 해 주는 이도 다 행복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들은 머지않아 좌절한다. 결혼식장에 울려 퍼지던 축가와 웨딩마치 대신 험한 소리가 오가고 서로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리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황금물결처럼 일렁이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지렁이처럼 세면대에 엉겨 붙어 있고, 그렇게 근사하던 그도 속옷차림으로 거실을 어슬렁거릴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알게 돼 가릴 곳을 가리게 됐다지만, 부부가 된 그들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 여자는 더 이상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날개 달린 잠옷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남자는 그녀를 위해 근사한 식사 제안을 하지도 않고 향기로운 꽃을 갖다 바치지도 않는다.

부끄러움도 예의도 다 잊어버린 그들은 무심한 듯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 바라보지도 않는다. 손을 잡는 대신 TV 리모컨을 움켜쥐고 드러눕는다. 그들은 마침내 식탁에서도 각자의 손바닥 안에 놓인 모바일 폰에 코를 박을 뿐 서로의 얼굴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다 문득 누구하고 저렇게 문자를 주고받는 거지, 하며 의심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본다. 예의 따위는 이미 잊어버린 그들은 서로의 모바일 폰을 뒤진다. 서로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그들은 각자 위안을 찾아 모바일 폰에 몰입한다.

결혼생활은 결혼식처럼 우아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결혼생활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처럼 고되고 험난하다. 고되고 험난한 그 길을 가기에 앞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살짝 달콤한 맛을 보여주는 게 결혼식이다. 그러니 결혼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마음 독하게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 신뢰 같은 것들이 결혼생활에 필요한 덕목들이라고 하지만 결혼생활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게 바로 경제적 현실, 즉 살림살이 이야기다. 사랑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는 소리가 우스개가 아니다.

이혼경험이 있는 심리상담 전문가 로빈 스미스 박사는 자신의 저서 ‘결혼생활의 거짓말’에서,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선 결혼 전에 반드시 상대에게 물어야 할 25가지 질문이 있다고 했다. 그 역시 돈과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봉은 얼마인지, 돈 관리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부채가 있는지 등 돈에 관해 물어야 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일을 하는지,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은퇴 후 계획은 무엇인지, 직장을 그만뒀을 때 계획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자주 출장을 다니는지, 위험한 일은 아닌지 등 직업에 관해 꼼꼼하게 물어야 한다. 섹스와 육아, 종교는 후순위였다.

최근 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남편의 소득이 증가할수록 이혼 위험은 낮아졌다. 남편이 월 300만 원을 벌면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이혼 당할 위험이 3분의1이나 떨어졌다. 월 1000만 원에 이르면 결혼 생활 중 별거나 이혼을 겪을 위험이 제로(0)에 가까웠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드는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늙은 늑대가 존경받는 것은 먹이를 뒤쫓아 가서 그것을 죽일 수 있는 동안뿐이다. 늙은 늑대가 노루를 잡으려다 실패한 날이 최후의 날이었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청춘들은 결혼만 하면 아내의 사랑을 무한 리필로 받으며 달콤하게 살 것 같지만, 꿈 깨시는 게 좋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남자가 존경받는 것은 돈을 벌어오는 동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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