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만 87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했다. 이때 토사(土佐)에서도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1592년 2월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시코쿠에서 일어난 군세력과 함께 웅천(熊川, 지금의 진해시 웅천동 왜성(倭城))에 상륙해 조선 군사와 싸웠다.

당시 쵸소카베의 참모인 요시다 이치사에몬 마사시게(吉田市左衛門政重)와 맞붙어 싸운 조선 군사는 바로 진해현감의 증손자 박호인이었다. 이 싸움에서 조선군사는 패하고 1593년 6월 화의가 성립되어 휴전으로 일본군은 철군하고 29일 쵸소카베는 진주(晋州)를 거쳐 토사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 갈것은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에 기록된 내용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호인은 경주성장이 아니고 진주현감의 손자이며 진주성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지금의 진해인 웅천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쵸소카베는 1597년 다시 출병해 다음해 3월 18일 일본으로 돌아갈 때, 경동(經東) 등 조선의 장인 30여 명과 함께 박호인을 데리고 일본의 우라도 성(浦戶)의 나가하마(長濱)에 상륙한다. 박호인은 일본 게이슈(藝州, 히로시마)에서 두 아들을 낳게 된다. 이 중 아들 하나가 아키즈키 쵸지(박원혁)다.

12세에 토사에 와서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시동이 되는데, 시동이 되려면 일본인이어야만 가능했다. 박호인은 일본군에게 패하였으나 두부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으로서 쵸소카베 모토치카로부터 일본으로가 두부를 만들어 줄것을 제안받고 그와 담판을 하게 된다.

담판할 당시 입회인이 쵸소카베 모토치카와 함께 4번 부대의 큐슈(九州)에서 출병한 아키즈키 타네나가(秋月種長)였다. 이런 인연으로 아키즈키가 박원혁을 양자로 삼기를 언약하고 야키즈키의 가호를 주었으며, 종(種)자 하나를 나누어 주어 아키즈키 쵸지로타네노부(秋月長次郞種信) 하타 타네노부(秦種信)이라 했다.

한편 박원혁은 일본에 머물며 관명을 쵸자에몬(長左衛門)이라고 불렀다. 토사국 코치시 케라(介良) 마을 촌장 아키즈키 우마스케(秋月馬助)는 아키츠키 쵸지의 7대손이다. 케라 마을의 신사에는 한국의 제사 때 병풍에 붙이는 지방(紙方)을 간판처럼 걸어 놓고 있다.

“증조고 통훈대부 진해현감 부군 신위(曾祖考通訓大夫鎭海縣監府君神位) 증조비 숙인 박씨 신위(曾祖 比 淑人朴氏神位) 조고 통훈대부 주부 부군 신위(祖考通訓大府主簿府君神位) 조비 송씨 신위(조 比 宋氏 神位) 외조고 생원 윤행(外祖考生員尹 行) 외조비 조씨(外祖 比 趙氏) 현비 숙인 윤씨 신위(顯 比淑人尹氏神位) 萬歷 13년 4월3일 부 박호인 효자 박원혁 만력 13년은 1585년”이다.

박 호인은 당시 진해현감의 증손자로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었다. 일본에 두부 제조기술을 전해준 박호인과 그의 아들 박원혁은 일본의 두부 원조임에 틀림없다.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두부 는 그곳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그 중 가장 맛있고 전통이 있는 두부로 일본 고지시의 당인두부를 꼽는다.

이 당인두부는 임진왜란 때 납치돼 가서 그곳에 살았던 경주성장 박호인이 그 두부를 만든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동방삼국에서 두부를 제일 잘 만들었고 중국이나 일본등에 두부 만드는 기술을 전해 주었으나 한국은 두부 만드는 법이 불과 몇가지가 남아 있지 않다.

일제 36년 동안 한국에서 생산한 콩의 전량이 공출되어 기름을 짜 전쟁에 이용되었고 콩깨묵은 우리에게 식량으로 배급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두부 제조 기술은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된다. 그러는 동안 일본의 두부 만드는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 한다.

특히 일본에선 최근 ‘고야(高野)두부’라는 전통 두부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야두부는 일본의 전통식품으로 두부를 잘게 썰어 얼려서 말린 보존식이다. 고야두부는 제조과정에서 다량의 수분이 빠지기 때문에 보통 두부보다 영양성분이 농축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야(高野)두부는 탕엽과 언두부를 접목한 두부다. 이제 우리도 두부의 종주국으로서 자긍심을 갖기 위해 잃어버린 두부문화를 찾고 되살리는 연구를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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