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賞春)

오세영(1942~  )

봄은 소리 없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낡은 코트 한 벌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
뒤진 장롱과 문갑에서 털린
옷가지, 물품들로
온 방이
울긋불긋 수라장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리는 구경꾼들

[시평]
엄동의 겨울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봄이다. 아직 코트도 또 내의도 벗어버리지 못했는데, 봄은 소리 없이 찾아와, 닫힌 창문을 열고 소리 없이 들어와, 우리가 겨우내 입고 다니던 그 낡고 낡은 코트를 그만 가지고 가버렸다.
어디 낡은 코트뿐이겠는가. 장롱과 문갑도 모두 열어놓고, 겨울옷은 겨울옷대로, 봄옷은 봄옷대로 흩트려 놓아 난장판을 쳐놓았구나. 봄은 울긋불긋 꽃 피는 마당에만 온 것이 아니라, 안방 안에도, 또 우리네 마음에도 찾아와 울긋불긋 난장질을 해놓는구나.
그래서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세상. 마치 봄은 수많은 구경꾼을 몰고 다니는, 지난겨울의 엄숙한 표정을 금방 바꾸어 버리는, 그래서 수선스러울만치 소란스러운 봄, 봄, 봄. 우리의 마음 마음대로 분탕질 해놓는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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