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미군 오모리 전범수용소 당시 수감 중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②패망 당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침 ③동경국제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있는 모습 ④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으로 죽은 뒤 미망인과 딸이 애도하고 있는 모습. 도조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상대국 군인들도 많이 죽었고, 이들 가족처럼 슬퍼하는 가족들은 더 많을 것이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대동아 공영권 장악 위해 2차대전 합류, 주변 아시아국가에 전쟁 아픔
자국 젊은이들에 자폭공격 지시… 한국에도 군수물자․전쟁동원 피해 입혀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1884~1948). 아시아의 히틀러라고도 불리는 도죠 히데키는 육군대장 출신으로 1941년 10월부터 1944년 7월까지 일본 내각의 제40대 총리를 지내면서 군사독재로 대동아 공영권을 위해 주변 아시아국가에 전쟁을 일으켜 피해를 준 인물이다.

미국 소련 등의 연합군에 의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뒤 A급 전쟁 범죄자로서 국제 군사 재판에 회부돼 1948년 교수형을 당해 생을 마감했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그를 야스쿠니 신사참배 대상자에 포함시켜 전쟁영웅으로 추대하고 있으며, 그를 영웅화한 영화 ‘프라이드 운명의 순간’은 일본에서 큰 흥행을 거두기도 했다.

그럼 과연 도조 히데키는 전쟁영웅일까. 만약 그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구했다면 전쟁영웅으로 추대되어도 그리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대동아시아를 장악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이끌었다. 1940년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의 육군상에 취임한 뒤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와 결탁해 3국동맹을 체결하는 데 힘썼다. 이는 주변 아시아국가를 더욱 침범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대륙진출을 위해 한국을 삼킨 뒤 중국까지 먹기 위해 중일전쟁을 치르던 중 장기전으로 접어들자 미국은 해외에 주둔 중인 일본군대의 완전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도조는 미일통상조약을 파기하고 인도차이나 침공을 이끈다. 프랑스가 지배 중인 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더 많은 곳을 지배하길 원했던 도조는 육군상을 겸임하면서 내각수상(총리)이 된다. 그리고 강경파였던 도조 군부내각은 대동아 공영권을 절대사수하기 위해 미국과의 전쟁도 불사하려고 했고, 그것이 결국 1941년 진주만 공격으로 이어지게 했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는 더 이상 무모한 싸움인줄 알면서도 어떡하든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공군 특공대들에게는 자폭하는 일명 가미가제를 지시해 자국의 젊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평균 연령 20세 정도의 지원병을 모집해 전투기 1대당 상대군함 1대를 폭격하도록 명령을 내려 자살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자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주변국에도 전쟁의 아픔과 피해를 끼쳤다.

현재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 개최 중인 천지일보 특별사진전에는 도조 히데키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과정부터 미군 오모리 전범수용소에서 수감생활, 동경국제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모습의 순간까지 미국AP기자가 당시 사건을 정리한 12점의 사진이 전시됐다.

도조가 사형된 후 그의 미망인과 딸이 도조를 애도하는 모습도 담겨 있는데, 이런 A급 전범도 죽음에 슬퍼하는 가족이 있다. 도조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상대국 군인들도 많이 죽었고, 도조 가족처럼 슬퍼하는 가족들은 더 많을 것이다. 이같이 도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슬픔을 안긴 장본인인 것이다. 우리 한국도 많은 군수물자 제공과 젊은이들이 강제징용으로 전쟁에 동원돼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이기도 하다.

도조 히데키의 미공개 사진을 수집한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관장은 “도조 히데키로 인해 많은 주변 국가들이 전쟁의 상처를 입었다. 또한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전범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같은 전범을 일본 아베 총리는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 우리가 바로 알고 증거사진을 가지고 일본과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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