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AD 547년, 동위의 실권자 고환(高歡)과 고징(高澄)이 잇달아 죽자 고양(高洋)이 자립하여 북제(北齊)를 세우고 문선제(文宣帝)로 등극했다. 총신 화사개(和士開)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고양이 죽자 발상도 하지 않고 고예(高睿)와 누정원(婁定遠)을 변방으로 축출한 후 병권을 장악하려다가 실패했다. 장례를 치른 후 고예, 누원정이 화사개를 좌천시켜야 한다고 주청했다. 호태후와 황제가 대책을 묻자 화사개가 대답했다.
“선제께서 신에게 후은을 베푸신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대신들은 폐하께서 어리다고 깔보며, 신을 축출하여 폐하의 날개를 잘라내려고 합니다. 고예의 말대로 원문요와 신을 오지로 보낸다면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아야 합니까? 일을 마친 후에 보내겠다고 하시면, 그들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황제와 태후는 일단 화사개를 연주(兗州)자사로, 원문요를 서연주자사로 임명했다. 화사개를 수도에서 축출하려던 고예의 계획은 100일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않았다. 며칠 후 쌍방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이 호태후의 진심을 알고 고예에게 이렇게 권했다.

“태후의 뜻이 이와 같은데, 전하께서는 왜 이처럼 고민하십니까?”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다. 어린 황제가 뒤를 이었는데 간사한 무리가 그 곁에 있어서 되겠는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하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

그는 다시 호태후를 찾아갔다. 태후가 술을 권하자 고예는 정색하고 국가의 대사를 술을 마시며 논의할 수 없다며 자리에서 떠났다. 화사개는 누정원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고 이렇게 말했다.

“권세가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을 때 그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자사가 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지금 작별 인사를 올리면서 이렇게 사례합니다.”

누정원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 조정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화사개는 불안한 조정을 떠나 외직으로 나가고 싶으니 큰 주의 자사가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누정원은 의심하지 않았다. 화사개가 작별인사를 하자, 누정원도 대문까지 송별했다. 대문 앞에 오자 갑자기 화사개는 태후와 폐하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누정원의 허락을 받고 태후와 황제를 만난 화사개는 이렇게 말했다.

“선제와 함께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신이 지금 수도를 떠나면 곧바로 큰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하에서 선제 폐하를 무슨 낯으로 뵙겠습니까?”

그가 큰소리로 울부짖자, 황제와 태후도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 대책을 물었다. 화사개는 조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당일에 누정원은 청주자사로 좌천되고, 고예는 못할 짓을 했다는 죄로 문책을 받았다. 화사개는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재기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고예는 다음 날 황제와 태후를 직접 만나 사안을 원상태로 돌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집안사람들이 만류하자, 고예는 이렇게 말했다.
“사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선제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고예가 대전에 도착하자 또 누군가가 이렇게 만류했다.

“전하께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시려고 합니다. 정황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무슨 음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늘을 등지지 않았으며, 땅에도 부끄럽지 않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태후를 만나 비분한 마음으로 할 말을 다했다. 호태후가 온갖 말로 위로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궁을 나온 그가 영항(永巷)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군사들이 나타났다. 체포된 그는 화사개의 심복 유도지(劉桃枝)에게 피살되었다. 고예는 후덕했다. 그러나 훌륭한 인품만으로 사활이 걸린 정치투쟁에서 이기지는 못한다. 그는 궁지에 몰린 정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 화사개가 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강직하고 올바른 것도 좋지만 냉혹한 정치투쟁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그는 소인배의 계략에 넘어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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