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덕기 선생(왼쪽)과 상동교회 모습 (사진제공: 독립기념관)

민중 목회자로 활발한 활동 전개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독립기념관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전덕기 선생을 선정했다.

전덕기 선생(1875년 12월~1914년 3월)은 서울 정동(貞洞)에서 전한규의 큰 아들로 태어났으며, 9살 때 부모를 잃었다. 이후 그는 남대문에서 숯장사를 하던 삼촌의 양자로 들어가 유년 시절을 보내다 17세 때 당시 정동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하던 스크랜턴 선교사를 만나 1896년 기독교에 입교했다. 1902년에는 정식 선교사가 돼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민중 목회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독립협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1903년에 상동교회 안에 ‘엡윗 청년회(Epworth League)'를, 1904년에는 중등교육기관인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을 조직했다.

전덕기 선생이 이끄는 상동청년회(1903년)와 상동청년학원(1904년)은 을사늑약 반대 투쟁 등 일제의 침략에 항거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 창설과 조직의 인적․물적 토대가 됐다. 선생은 신민회 발기인 7명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민회 운영에 필요한 재무를 총괄했고, 신민회 중앙총회 평의원 겸 서울지역 신민회 총감(總監)으로 활동했다.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1911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조작하고 많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면서 신민회 조직이 와해됐다.

이때 전덕기 선생은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구속된 독립운동가를 대신해 오산학교(五山學校)와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운영하는 한편 와해된 신민회 조직을 재정비하는데 힘을 쏟았다. 선생은 1914년 3월 순국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3월 한 달 동안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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