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동대지진 대학살 일제만행 현장(1923년).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억울하게 희생당한 넋을 위로할 위령탑 필요
日, 흉흉한 민심 돌리려 자행… 죽창·쇠꼬챙이로 무참히 살해
정성길 관장, 억울한 피해자 위해 위령탑 건립 서명운동 나서
천지일보 사진전서 관동대학살 미공개사진 12점 최초 전시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수천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일본 관동(간토)지역 노동자로 강제징용 돼 끌려간 우리 선조들이었다. 일본 자경단은 조선인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창과 쇠꼬챙이를 들고 어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다 죽였고, 무동력의 배라도 타고 바다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으나, 지금껏 희생비 추모조차도 없었고 우리는 이 역사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학살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관동대지진 대학살 증거사진을 들고 나왔고, 죽은 선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동안 마음에만 간직해왔던 숙원사업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처음 이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진을 입수했을 시 그는 참혹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동시에 일제의 만행에 분개했다.

그는 다짐했다. 조국이 필요할 때 내놔야겠다고. 그리고 아무도 챙기지 않는 관동대지진 대학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비를 세워 위로해야겠다고 말이다. 최소 6천 명이라는 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는데,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려 했으며 우리는 그러는 사이 잊고 있었다.

정 관장은 이 사건이 잊어선 안 되는 역사지만 그간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잊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이 사진을 공개하려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했고, 오히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그를 공격했다. “사진에 나온 죽은 사람이 진짜 조선인이 맞냐. 죽은 사람 DNA 검사를 해볼 수도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며 사진의 신빙성을 평가절하하려고 했다는 것. 이에 그는 “참 비겁하단 생각이 든다. 일본 아사히신문에서도 당시 1925년도에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고, 그러면서 일본 교과서에도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사실이 실려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

지난해 초 일본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표현은 없애기로 했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오자, 정 관장은 국내언론에 증거사진을 공개하며 맞섰다. 그러나 우리 정부 차원의 대항은 없었다. 공개한 사진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시체 여러 구가 담겼고, 학살된 여성들은 모두 하의가 벗겨져 있다. 이는 치욕스럽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 일본 자경단들이 죽창과 쇠꼬챙이를 들고 코를 막고 있다. 여성 시체들은 하의가 벗겨져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들이 조선인이라는 증거에 대해 정 관장은 “이미 당시 일본 언론을 통해 일본인이 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발표가 났다. 사진을 통해 죽은 사람이 일본 자국민이 아니란 것만 밝혀내면 자연스럽게 조선인이 되는 것”이라며 사진을 설명해나갔다. 그에 따르면 먼저 일본은 개 한 마리가 죽어도 비석을 세울 정도로 장례문화에 애착을 보인다. 그런 일본이 사람 시신을 불태우고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방치해뒀다는 것은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여성 시체들은 다 벗겨져 있다. 특히 음부가 심하게 부풀어 있거나 심한 상처가 있다. 그리고 일본 자경단들이 죽창과 쇠꼬챙이를 들고 있다. 이는 자경단이 저것을 가지고 한국여성들을 무참하게 음부를 찔러 치욕스럽게 죽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정 관장은 “개중에는 죽은 사람을 저렇게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법학의학적인 논리로 보면 죽은 사람은 아무리 찔러도 부풀어 오르거나 상처가 심하게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살아 있는 사람을 저렇게 찔렀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또한 자경단이 들고 있는 물건이 문제다.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다. 왜냐하면 살인도구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이제 3월 1일부터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 개최되는 본지 두 번째 특별사진전에 12점의 관동대지진 학살사진을 공개한다. 미공개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의 오랜 숙원사업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게 된다. 국민의 힘으로 정부가 나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 말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진행한 첫 번째 전시에서 공개한 2장의 사진을 보고 많은 이들이 울고 가는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위령탑 건립 사업을 이번에 진행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타국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영령들이 9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위로받을 기회를 얻었다. 정 관장의 뜻한 바대로 관동대지진 때 희생당한 우리 선조들의 영령들이 이렇게나마 억울함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관동대지진 대학살 일제만행 현장(1923년). 일본 자경단에 의해 살해되어 넓은 공터로 이송되어 온 것으로 본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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