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체력은 국력이라며 열심히 국민체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에 맞춰 모두가 똑같은 동작으로 팔 다리를 휘저으며 체조를 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빰빠라 빠 빰빠,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면 로봇들처럼 똑같이 체조를 했다. 체력이 과연 국력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체조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어리석었는지 순진했는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사는 형편도 변변찮았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뽐내지도 못했다. 비행기에 김치를 싣고 가다가 비닐봉투가 터지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는 둥 요즘 세대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들을 무용담처럼 하던 시절이었다.

복싱 챔피언이 탄생하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경기장으로 바로 전화를 연결하기도 했다. 눈이 퉁퉁 붓고 입이 삐뚤어진 챔피언이 전화기를 들고 예 각하, 하며 감격해 하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청와대로 불려 들어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축하 인사를 받았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요즘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대통령이 축하한다고 한 마디 하면, 방송에서 바로 국민들에게 알려 준다. ‘친절한’ 방송이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와 축구를 하면 손에 땀을 쥐어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수중전에 강한 말레이시아가 일부러 운동장에 물을 들이 부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물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말레이시아와 붙어서도 절절 매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월드컵 본선 무대도 떼 논 당상처럼 여기지만, 그 때는 진짜 그랬다. 어쩌면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을지도 모를 아득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도 국가대표가 신는 멋진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지만 그 시절에는 어림도 없었다. 권투가 인기가 있어서 남자 아이들은 씩씩 소리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고, 코피가 날 때까지 권투 시합을 했다. 이소룡 덕분에 아이들이 멀쩡한 빗자루 몽둥이를 잘라 쌍절곤을 만들기도 했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고 스포츠도 많이 변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처음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스포츠도 참 많이 발전했다. 올림픽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던 피겨 스케이팅이나 컬링 같은 종목들도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생활체육의 시대라며 국민들 누구나 한두 가지 스포츠를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스포츠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대개는 구경하고 응원만 한다. 올림픽 기간 중 선수들은 땀을 흘렸지만, 많은 국민들은 치킨 덕분에 뱃살이 늘었을 뿐이다. 좋아서 한 잔, 기분 나빠서 한 잔, 그렇게 마셔댄 덕분에 간도 힘들었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국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스케이팅을 즐기고 덕분에 금메달을 다발로 들고 갔다. 우리들은 평생 스케이트 한 번 신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스키장 한 번 못 가본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국민들은 좋다며 박수를 친다.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엘리트 선수 육성 정책 덕분이지, 탄탄한 생활체육이 밑거름이 된 게 아니다.

인구가 오천만인 우리는 전국에 공영인 운동장이 156개, 체육관 313개, 수영장 112개(민간 609개), 빙상장 19개(민간 33개)가 있을 뿐이다. 인구 백만의 독일 쾰른에는 체육관이 210개, 공공 수영장만 150개다. 이 정도는 돼야 생활체육이라 할 만하다. 학교에서도 마음 놓고 축구도 못하고 그나마 상급학교로 갈수록 체육시간마저 없애 버리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도 진정한 생활체육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체력은 국력,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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