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선비제국(鮮卑帝國)
[고전 속 정치이야기] 선비제국(鮮卑帝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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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북만주에서 남하한 선비족의 북위가 고환(高歡)이 지지하는 동위와 우문태(宇文泰)가 지지하는 서위로 양분되었다. 후세에 대당제국 건설의 중심세력 관롱집단(關隴集團)을 양성한 우문태는 중국인의 소외감을 없애고 선비족은 북방민족 특유의 강건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비족의 전통인 부락병제(部落兵制)를 유지하면서 한족의 <주례>에 따른 ‘부병제(府兵制)’를 만들어 전문적인 전투집단을 양성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한족은 격리되었다. 또 한족 출신의 장군들을 모두 관중에 적을 두도록 하거나 선비족의 후예로 꾸몄다. 당제국을 건국한 이씨는 농서 이씨였다. 북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었다. AD 554년 우문태가 병사했다. 25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그는 동쪽보다는 남쪽으로는 세력을 확장했다. 우문태의 아들 우문각은 자립하여 북주(北周)를 건국했다. 그가 효민제(孝愍帝)이다. 남조에서는 양이 망하고 진패선(陳覇先)이 진(陳)이 건국했다. 남북조 모두 새로운 실력자가 황제로 등극했다. 효민제의 당형 우문호(宇文護)가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식(李植)과 손항(孫恒)은 하찮은 무리들과 어울리면서 우문호를 비방했다. 효민제도 이미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다. 효민제가 반응을 보이자 두 사람의 무리들이 다시 부추겼다.

“우문태는 자신을 주공(周公)과 비유합니다. 주공은 7년 동안이나 섭정 노릇을 했습니다. 총명과 지혜를 겸비한 폐하께서 7년 동안이나 신하에게 정치를 맡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엉뚱한 자신감이 넘쳤던 효민제는 우문호를 암살하려고 했다. 소인배는 결심을 하고나서도 걱정하지만, 대인은 정당성을 확신한다면 최대한 노력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식과 손항은 불안감이 커지자 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고 했다. 어중이떠중이까지 모이자 비밀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우문호는 선수를 써서 이식과 손항을 추방했다. 효민제가 두 사람을 소환하려고 하자, 우문호는 다음과 같이 반대했다.

“가깝기로는 형제보다 더한 사람이 없습니다. 형제끼리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선제께서는 어린 폐하를 신에게 맡겨 가문과 나라를 지켜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폐하의 위엄이 사해에 떨친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은 간신이 득세하여 폐하와 사직을 어지럽히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신은 지금 폐하의 형이자 재상의 지위에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간신들의 참언을 믿고 골육을 멀리 하시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통이 작은 효민제는 의심을 풀지 못했지만, 이식과 손항을 불러 들이자고도 하지 못했다. 이식과 손항도 우문호의 실력과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다시 위해를 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이 낼 수 있는 계획은 뻔했다. 효민제의 명의로 잔치에 초대했다가 암살한다는 음모였으나 이미 누설된 것을 몰랐다. 이번에도 우문호가 선수를 썼다. 그의 명을 받은 주국(柱國) 하란상(賀蘭祥)과 영군(領軍) 울지강(尉遲綱)이 두 사람을 궁으로 불렀다. 아무 것도 모르고 궁으로 들어 온 그들은 체포되어 우문호의 부중으로 끌려갔다.

대세가 기울자 효민제는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전에 숨어있었다. 우문호는 하란상을 시켜 궁으로 들어가 효민제를 끌고나와 별궁에 가두고, 공경들과 상의하여 우문태의 아들 우문육(宇文毓)을 옹립했다. 그가 명제(明帝)이다. 이식과 손항은 피살되었으며, 효민제도 1개월 후에 살해되었다. 이식과 손항은 무능함을 모르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효민제의 심리를 부추겼다. 황제가 걸려들자 두 형제의 싸움을 이용하여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정적의 손에 잡혔다. 노련한 우문호는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어리석은 정적을 가볍게 일망타진했다. 그러나 우문호도 자기보다 고수를 당하지는 못했다. 명제는 우문호에게 피살되기 직전에 재빨리 동생 우문옹(宇文邕)에게 전위했다. 그가 20년 동안 북주를 다스린 무제이다. 무제는 우문호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우문호는 신흥민족 돌궐과 연합하여 북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AD 572년, 무제는 드디어 우문호를 죽이고 친정을 시작했다. 북제에서는 명장 곡율광(斛律光)이 피살되면서 급격히 세력이 약화되었다. AD 576년, 무제는 마침내 북제를 멸망시키고 북방을 통일했다. 중국은 남북의 대결이 재개되었다. 선비족은 혈통적으로 우리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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