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뛰고 있는 이병윤 대표 (사진제공: 이병윤 대표) 

색동칠보 이병윤 대표

고요해져가는 육체·정신에 파도 일으키는 놀이
원초적·단순한 운동이지만 실천하면 짜릿한 운동

아무 준비 없이 달리기 시작… ‘살아있음’느껴
‘노숙자 마라톤’으로 의욕 고취시키는 꿈꾸기도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인생을 마라톤에 곧잘 비유한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결승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 장기전인 만큼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마라톤을 해보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자는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체력의 소유자로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마라톤 풀코스 30회 완주 기록이 있는 이병윤 색동칠보 대표 역시 처음엔 그랬다. 마라톤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마흔의 직장인이었다. 신문기자에, 광고대행사를 거쳐 한국IBM(주)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별로 뛸 일 없는 보통의 남자였다. 하지만 마흔넷에 뛰기 시작한 그는 더 이상 보통의 남자가 아니다.

올해 그의 나이 쉰아홉, 초원을 달리는 21세기 노마드(유목민)가 돼 한강변 초원지대를 누비며 달리는 슈퍼 마라토너가 됐다. 나이를 잊은 마냥 산을 올라도 호랑이처럼 뛰어다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지난해에는 마라톤을 통한 의식계발서 ‘마라톤 힐링, 삶을 바꾸다’는 책도 냈다.

그는 어떻게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일까. 이 대표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나이는 매년 먹는데 드라마틱한 것은 없고, 그저 밋밋한 나날만 지나가는 것 같았다”며 “그러던 중에 내 자신의 신체 기능과 육체의 한계를 경험해 보고 싶었고, 우연한 계기로 달리기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도 처음엔 아무런 준비 없이 달렸다. 맨몸으로 가서 뛰었다. 아니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뛰다 걷기를 반복하며 기진맥진한 상태에도 이르러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훈련에 참가하면서 별도의 기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그는 “누워 있으면 생각도 누워 있고, 걸으면 생각도 걷고, 뛰면 생각도 뛴다. 몸의 활성화가 정신의 활성화를 유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몸이 움직이면, 생각도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김남인 저자가 쓴 ‘태도의 차이’에서 ‘육체에 발동이 걸리면 정신에도 물기가 돌고 빛이 난다. 그제야 자신이 가진 잠재력이 하나둘 꽃 핀다’는 글과 일맥상통한 말이었다.

이 대표는 마라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중년의 마음을 씻어내는 한바탕 굿판 같은 놀이”라고 했다. 중년으로 들어설수록 건강에 위협을 느끼는 반면 삶의 책임감과 중압감은 오히려 더 커지는 불안한 세대. 그래서 마라톤에 열광하는 나이가 대부분 40~50대인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마라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힘들고 과격한 이미지와 달리 나이든 어른들의 놀이다. 고요해져가는 육체와 정신에 의도적인 파도를 일으켜 삶을 펌프질하는 놀이”라고 말했다.

또 달리기를 생활화하면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생각과 행동도 동적으로 바뀐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게 되지만,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몸을 많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면서 “예를 들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대퇴부 근육강화운동을 할 수 있고, 내리막에서는 복근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일상에서 즐겁게 걷게 된다”고 설명했다.

마라톤 완주를 위한 훈련과 성취감이 생활전선에서 얼마나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대표는 “마라톤은 반복된 연습으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현실은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래서 마라톤을 극복하는 의지와 집념으로 현실의 고통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짬을 내서 달릴 때 자신감과 열정, 활력과 에너지를 얻고 치열한 세상을 용맹스럽게 사는 힘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생각보다 얻는 게 많은 마라톤이다. 그 나름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42.195㎞라는 완주거리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게다가 드물긴 해도 목숨을 잃는 사례가 보도되니 두렵기까지 하다.

이에 이 대표는 “마라톤 경주를 하다가 죽는 것은 기사 쓰다 죽는 경우와 같다. 평소 지병이 있거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뛰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라며 지레 겁먹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는 마라톤이 마음과 육체가 긍정적으로 선순환하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노숙자 마라톤’을 개최하고 싶은 꿈을 밝히기도 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노숙자 연구를 10개월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의욕이 없다”며 “그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의식의 활성화를 위해 마라톤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매년 2~3회 마라톤 경주에 참가하는 이 대표는 달린 지 10년이 넘어가도 지겹다고 생각한 적이 없단다. 그는 올해도 3월에 개최되는 마라톤대회에서 뛸 예정이다.

그는 “달리기는 의욕만 있으면 어느 장소에서든 시작할 수 있고, 특별한 복장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며 “가장 원초적이면서 단순한 운동이지만, 실천했을 땐 그 어떤 것보다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경주 하루 전날이면 흥분과 긴장으로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자신만의 배번과 기록 칩을 챙기며 설렘 속에 잠을 설친다. 마침 찾아온 대회 당일, 인산인해를 이룬 대회장에서 특유의 분주한 기운 속에 총성과 함께 또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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