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난 즈음에 김연아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 박승희의 2관왕도 축하를 받을 만한 영광스런 성과이지만 김연아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서 한국 피겨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던 김연아는 당시만 해도 한국의 김연아였다. 김연아 이전에도 아시아계 선수로서 일본의 이토 미도리, 중국계 미국인 미셸 콴 등이 이미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 대회를 제패하면서 세계피겨 무대는 황색돌풍이 지배하고 있었다. 김연아가 우승한 것은 유럽 및 미주 지역 전문가들에게는 또 하나의 황색선수가 탄생했음을 의미하는 것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선수로서, 또 인간으로서 크게 성숙한 기량과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이제는 세계 속의 김연아를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김연아는 러시아의 홈 텃세에 따른 심판진의 편파판정으로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넘겨주고 은메달에 머물러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기대 밖으로 여제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한 모습으로 당당히 승복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는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김연아에 대한 편파판정은 이미 뉴욕타임스, NBC TV 등 유수한 세계 언론과 올림픽 2연패를 차지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 등 전 세계적인 피겨 스타들 등 해외서도 인정을 하는 터였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김연아는 은메달에 머물렀으면서도 진정한 승자로 세계 피겨역사에 화려한 장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스포츠팬들은 이번 소치올림픽을 뒤로 공식적인 대표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김연아에게 많은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그동안 즐거움과 기대감을 안겨준 것에 큰 격려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가 이루어낸 성과와 업적이 너무나 컸고 깊었기 때문이다. 김연아 이전의 세계 피겨는 한국 선수가 범접하기에는 너무나 벽이 높았고 차원이 다른 종목이었다. 올림픽의 꽃인 피겨는 항상 유럽 및 미국 선수들 일색이었으며 한국 선수는 참가 자체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00년대 들어 동양권 선수가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도 한국은 이렇다 할 유망주조차 발굴하지 못했다. 이런 피겨 불모지에서 희망의 새싹을 움트며 피기 시작한 것이 바로 김연아였다. 그는 한국 피겨의 활동 공간을 혼자서 세계무대로 크게 넓혀놓은 신데렐라로 성장했다. 각종 국제대회서 성적을 내기 시작한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마저 제패하며 한국 피겨가 낳은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김연아가 특별한 것은 높은 수준의 세계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데다 서양 전유물인 콘텐츠를 한국적인 정서와 감성으로 잘 녹여서 표현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하고 훈훈한 인간적인 정을 표현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빙판 위에서 아름답고 부드러운 연기로 표출한 김연아의 예술적인 감성은 주어진 각본대로 풀어나가며 뻣뻣한 동작을 보이는 여타 세계의 다른 선수와는 분명 차이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김연아는 이번 동계올림픽 공식 경기가 끝난 뒤 펼쳐진 갈라쇼에서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존 레논의 이매진을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상적인 손동작과 표정연기를 소화해 세계 최고의 아이스 퀸임을 입증했다.

한국 스포츠의 지평을 전 세계에 넓게 펼쳐 보여준 김연아가 국가대표로서 공식 마침표를 찍음에 따라 한국 빙상은 큰 숙제를 떠안게 됐다. 김연아의 뒤를 이를 새로운 유망주 발굴과 함께 피겨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김연아에 필적할 만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으나 여러 여건과 지원이 갖춰지고 어린 유망주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연아와 함께한 지난 수년간, 우리 국민들은 힘든 일상생활 속에서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가 빙판위에서 펼친 한 폭의 그림 같은 아이스쇼는 스포츠팬들에게 희망과 꿈,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김연아의 그간 노고에 갈채를 보내며 제2, 3의 김연아가 빠른 시일 내에 탄생해 4년 후에 있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새로운 요정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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