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왕가네 식구들’. 종영된 KBS-2TV의 주말 드라마다. 지난해 8월말부터 올 2월 16일까지 장장 5개월 반이나 안방을 찾아든 이 드라마는 숱한 화제를 뿌리면서 지난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왕씨 가족을 중심으로 부부 간의 갈등, 부모의 편애에 대한 자식들의 갈등 등을 그린 드라마다. 시청률이 매번 40% 이상의 고공 행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고, 마지막 회(50회)도 47.3%였으니 TV드라마로서 성공작이라는 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거의 반년 동안 주말마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이 드라마는 일반가정에서 일어날 수 없는 복잡한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막장드라마의 요소가 많다. 하지만 비난 속에서도 끝까지 방영되면서 인기몰이를 한 것은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내용이 담겨졌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3대가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세상일이 온전할 리만은 없어 이 드라마에서도 부부 간의 갈등과 이혼,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갈등 등 숱한 우여곡절이 그려졌다.

왕가네의 가훈은 ‘입장 바꿔 생각합시다’이다. 이 가훈이 개인주의화되는 현 시대 사람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을 주는 등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최종회의 마지막 장면은 상황 설정이 잘못된 옥의 티였다. 드라마 속에서 30년이 흘러 왕가네 셋째 딸 광박의 회갑에 가족들이 모인 것이다. 물론 왕가네 식구들이 성공하고 그동안 무탈하게 잘 살았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이긴 했으나 극중 인물들의 나이 등에 비추어볼 때에 황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막내아들인 왕대박이 미국에 이민 떠난 것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배역을 맡은 배우가 10대 중반의 학생이어서 30년 후를 설정한 40대로 변장하기가 곤란해서가 아닌가 짐작된다. 이 상황에서도 네티즌들은 왕씨 가문의 대를 이을 외아들이 할머니, 부모를 남겨놓은 채로 불쑥 이민을 갔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어쨌든 ‘30년 후’라는 설정은 시트콤이 아닌 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무리수요, 억지 전개라 보인다.

작가가 출연진 모두를 최종편 최종 장면에 나오게 하려는 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현실적인 상황에 맞지 않아 어색함을 준다. 가장인 왕봉의 어머니로 나오는 안계심(나문희 분)의 극 중 나이는 78세(드라마 등장인물에 명기)인데, 30년 후인 최종회엔 108세나 되고, 왕봉은 91세, 이앙금의 나이가 90세가 된다. 안계심은 극중 이름 그대로 광박의 회갑잔치에는 안 계셔야 맞는 상황이었다. 잘 나가다 어디로 빠진다고 드라마 끝의 억지 상황 설정은 보는 뒷맛이 개운치 않고 시청자를 모독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사실 드라마에서 시청률 10%대 이상은 성공작이다. ‘왕가네 식구들’ 최종회가 방영된 지난 16일 당시, 다른 드라마의 시청률은 ‘황금무지개(MBC)’ 16.1%, 사극 ‘정도전(KBS-1)’이 15.2%인 상태에서 47.3%라는 시청률은 완전 대박이다. ‘왕가네 식구들’ 드라마의 결말 가운데, 시청자들은 주인공인 고민중(조성하 분)과 오순정(김희정 분)의 인연이 어떻게 마무리될까 관심을 보이는 한편, 또한 드라마 시청률이 50%를 넘어설까 하는 점에서도 관심이 모아졌다.

‘왕가네 식구들’ 드라마 최종회를 보면서 좋은 드라마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난다. 지금까지 방영된 TV 연속극 가운데 시청률 50% 이상을 올린 드라마가 많고, 국산영화 중에서 1천만 명 관객의 금자탑을 올린 영화들도 많다. 그렇지만 안방극장이라고 하는 연속극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비춰지려면 현실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 내용은 공감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가능하면 갈등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방향에서 무리한 상황 설정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TV드라마는 특성상 시청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무리 기획이 참신하고 명배우가 나오고 좋은 내용이더라도 시청률이 한 자리 수이고,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한다면 그 작품의 수명은 오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드라마 제작진이나 방송사는 그 내용에 있어 불륜이나 모략 등이 활개치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막말 등 어떻게 하든지 간에 시청률을 높여보자는 일념뿐이어서 막장드라마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낮은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배우나 제작진도 당연히 받게 되지만 극본 작가의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그 부담이 오죽했으면 지금까지 방영된 한국 TV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65.8%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킨 ‘첫사랑’ 드라마 극본을 쓴 고 조소혜 작가의 생전의 말에 울림이 클까.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 작가는 투병 중에 있으면서 ‘시청률이 암보다 더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했는바, 드라마 제작진이나 출연배우, 방송사 관계자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발목잡이자 멍에의 굴레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청률이 곧 국민의 관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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