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산책] 두부의 기원(3)
[별미산책] 두부의 기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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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이 외에 입론자들은 또한 1959년에서 1960년까지 하남(河南) 밀현(密縣) 타호정(打虎亭) 1호 고분에는 두부 작업장이 있는 석각이 있고 그림에는 콩류를 가공하여 부식을 만드는 장면이 있다(주광무(周光武)의 <중국요리사간편(中國烹飪史簡編)>참고). 이 그림이 있는 돌의 내포가 확실한지는 여전히 고증이 필요하다.

현재의 두부사료로 보면, 오대(五代)시기 사작(謝綽)의 <습유록(拾遺錄)> 외에, 도곡(陶谷)의 <청이록(淸異錄)>에 두부의 명문(名文)을 드러내길 “태양시에 두부가 여러 개 나와 있는데, 읍내 사람들은 두부를 소재양이라고 불렀다(日市豆腐數個, 邑人呼豆腐爲小宰羊)”고 하였다.

따라서 조원우는 10세기 가량에 두부는 화중(華中)일대에 이미 일상적인 식품이었고 그것을 처음 만든 연대는 더욱 이를 것이나 아주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아마도 9세기 말엽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중국에서 두부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오대(五代)말 부터 송나라 초기(서기 약 960년경) 도곡(陶穀)이 쓴 <청이록>이다. 그렇다면 <본초강목>이나 이를 근거로 기록한 우리의 <명물기략(名物紀略)>과 <재물보(才物譜)>의 최초로 두부를 만든 사람이 희남왕 유안이라는 설은 신빙성이 없는 전설에 불과하다.

전한(前漢)(BC200년) 시대는 만주일대를 국토로 하는 고조선(古朝鮮) 시대이며, 한나라가 고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한 것은 BC 108년부터다. 당시는 콩의 원산지가 만주지역과 한반도이고 그외 중국지역에서는 콩이 생산되지 않았다.

두부를 만드는 주재료인 콩이 없는데, 두부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의 두부의 기원은 신빙성이 없는 전설에 불과하다.

북한의 고고학자 도유호는 1959년에 출토된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 유물인 토기의 밑바닥에서 팥, 조와 더불어 탄화된 콩이 출토되었는데 오늘날 재배종과 그 크기가 비슷하여 재배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1972년 경기도 양평군 팔당 수몰지구에서 밑바닥에 콩의 무늬가 있는 청동기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러한 유물과 문헌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콩의 원산지에 해당되는 옛 고구려땅과 한반도에서의 콩재배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우선 두부의 주원료가 되는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 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의 각형이 가장 많은 곳이라 보고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 남부이다.

오하이오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 식물병리과에 있는 A. E. Dorrance와 A. F. Schmitthenner는 미 농무부 콩생식질수집소(Soybean Germplasm collection)에서 새로운 저항성원을 탐색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수집된 콩 가운데 저항성원이 풍부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험된 887개 수집콩들 가운데 55.5%는 부분저항성이나 내성 수준이 높았다. 모든 레이스들에 대해 저항성이었던 수집콩들과 부분저항성 수준이 매우 높았던 수집콩 대부분은 한국에서 수집된 것들이었다. 이 결과들로 볼 때 한국이 Rps 유전자와 부분저항성 모두에 대해서 P. sojae에 많은 저항성원들을 가진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 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의 각형이 가장 많은 곳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곳이 바로 만주 남부와 한반도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병 저항성원 탐색 중에 한국이 콩의 원산지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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