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황희 정승은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18년이나 지냈다. 요즘 말로 코드를 잘 맞추어 영의정으로 장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정승이 되기까지는 파직과 귀양살이, 복권 등을 거치는 파란만장한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의(大義)에 충실하고 절개가 있는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본디 황희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송악산에 있는 산골짜기 두문동으로 은신했었다. 이성계는 고려 말의 무장이요 공양왕의 신하였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 고려 임금의 신하가 섬기던 임금을 폐하고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 의(義)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이성계의 조정에 출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황희의 충절과 청빈함, 인물 됨됨이 때문에 그를 두문동에 살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황희는 거절하지만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출사해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왕(王)씨 왕조의 신하였던 황희는 이(李)씨로 성(姓)이 바뀐 역성(易姓) 새 나라에 출사한다. 그것은 이성계의 간청보다도 두문동에 같이 은거하던 고려 유신들의 설득이 더 주효해서였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황희는 당시 젊었다. 그리고 유능했다. 이런 것들을 인정한 두문동의 다른 유신들이 그의 출사를 설득하고 권유한다.

설득의 논리는 이러하다. ‘그대가 여기서 우리와 죽는 것도 의가 되겠지만 나가서 왕조의 변화와 상관없는 만백성을 위해 정사(政事)를 잘 하는 것도 의로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이 황희를 움직였다. 이렇게 해서 황희는 두문동을 떠나게 된다. 그가 떠나자 새 왕조의 눈엣가시였던 두문동은 나중에 태종 임금이 되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불태워지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한다.
황희를 두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절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일이 없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 했는데 왜 그럴까. 그가 대의에 어긋나는 입신양명이나 벼슬자리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백성을 가여워 하고 백성을 위한 충정으로 관직을 수행했다. 임금에게도, 임금이 바뀐들 항상 그대로인 만백성을 위해 올바르게 정사를 보도록 일신의 안위를 걸고 진언하고 고언 했다. 말하자면 두문동에서 어렵게 출사를 결심할 때의 초심을 일관되게 실천한 것이다.

이처럼 근본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삶을 산 사람을 누가 감히 변절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황희는 지금 이 시대에 회자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귀감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사사로운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백리였다. 정승의 국록으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어 보이지만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청빈한 생활을 영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친인척들도 그리 살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이런 얘기가 전해진다. 아들인 황수신이 녹봉과 아내의 삯바느질 벌이로 새 집을 지어 집들이를 한다고 하자 ‘그 집을 부수지 않으면 네 집에 발걸음을 않겠다’ 고 격노했다는 것이다.

이에 황수신은 어버지께 용서를 빌고 애써 지은 집을 헐어야만 했다. 잘못을 깨우치고 용서를 빈 아들 황수신 역시 나중에 영의정이 돼 가문을 빛낸다.

황희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며느리가 하는 삯바느질도 못하게 했다. 그 까닭은 아들의 녹봉으로도 풍족하지는 않을 지라도 굶지는 않고 살 수 있는데 왜 삯바느질에 생계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일거리를 빼앗느냐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민초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의 발로인가.

황희, 황희 정승 같은 사람, 아니 비슷한 사람이라도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 어디 없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있어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간다면 아무리 여야로 갈려 싸우고 싸워야 하는 국회의원들일지라도 숙연해질 텐데 말이다.

그런데 황희 정승 같은 분이 돈이 권력이고 물질로 못하는 것이 없는 물질만능인 지금 세상의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사실까.

그도 어느 산 속 선승(禪僧)이 아닌 한 생활양태에서 평범한 우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투기나 탈세, 무슨 의혹 같은 것이 제기되는 삶은 안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꼭 투기를 하고 의혹을 무릅쓰는 생활을 해야 존경받는 가장이고 유능한 남편이며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탐욕의 시대에 우리의 훌륭한 선인 황희의 정신이 더욱 빛나는 소이(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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