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이제 며칠만 있으면 박근혜정부 출범 1년을 맞는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지난 1년 동안 숨 막히는 듯한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북한의 대남 공세와 전쟁 위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정세만 보더라도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앞의 사건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뒷사건이 터져서 앞의 사건을 덮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사건 이후부터 불거진 여러 사건들을 짚어보면 금세 공감할 것이다. 마치 뒷물결이 앞물결을 치고 나아가듯, 지난 1년의 국내정세는 그렇게 정신없이 질주했다.

끝없는 소모전, 미래가 어둡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1년의 질주는 그다지 건강한 흐름이 아니었다. 아주 압축적으로 말하면 국정원이 그 중심부에 있었다는 점에서 ‘정상의 비정상화’에 다름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정치의 중심에 섰던 사례가 또 있었던가. 그것도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권 논란의 핵심은 또 국정원이다.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2013년을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사자성어로 규정했던 것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잘못된 것을 고집하고 순리에 거슬리는 행동을 거침없이 해댔던 지난 1년의 세월, 불행하게도 ‘도행역시’는 여전히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다시 국정원이 그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검찰이 항소를 했으니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1심 판결은 무죄로 나왔다. 그런데 유무죄의 판결을 넘어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그 증거자료는 중국 공안당국에서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데, 그게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주한 중국대사관이 밝힌 것이다. 정말 충격적이다. 과연 중국 정부의 얘기가 맞는 것일까, 맞다면 누가 조작한 것일까. 그리고 증거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놓고서 외교부와 법무부의 얘기가 다르다.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그 과정에서 국정원이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또 특검 얘기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몸통이 되고 검찰과 새누리당이 양쪽 날개를 펴면서 지난 1년의 정국을 좌우해 왔다. 그 결과 여권은 순풍을 타는 듯 잘나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국민은 너무도 피곤하다. 민생이니 복지니 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의 정치담론을 이런 식으로 끌고 갈 것인지, 언제까지 거짓과 진실공방에 매몰돼 끝없는 소모전을 펼칠 것인지 그리고 또 언제까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구의 칼춤을 보게 할 것인지가 정말 원망스럽다는 뜻이다. 간첩이니 종북이니 하는 말들이 지금 당장은 국정원에 힘을 실어주고 박근혜정부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 끝은 어쩌면 여권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다지 무지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1년, 여전히 희망보다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청와대는 귀를 막았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고통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무표정한 얼굴, 희망을 잃은 중장년들의 삶의 무게, 끝없는 나락으로 내몰리는 우리 사회의 노년층,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국정원 문제를 놓고 각을 세우고 있다. 며칠 뒤 또 새로운 사건이 터져 증거조작 논란도 밀어낼지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가 아니라 ‘국민항복시대’를 만들고 있고, ‘국민소통’이 아니라 ‘국민소탕’을 시키고 있다”. 한 지인의 말이다. 가슴을 찌르는 창끝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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