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울었다 웃었다, 참 희한한 계절이다. 소치에서 메달 따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다가도 이런저런 안타까운 소식에 금방 우울해진다. 국민 모두가 조울증 환자가 된 것 같다. 이번처럼 메달에 목말랐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메달 소식이 어느 때보다 반갑다. 하지만 동해안 폭설과 경주 대학생 사고 때문에 마음 놓고 좋아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으며, 장강의 앞 물도 뒷물에 밀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챔피언들이 새로운 스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유망주들이 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록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한계를 뛰어넘어 극한의 도전정신을 보여준 노장들의 투혼도 아름다웠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노장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이었다. 겁 없는 십대들의 거침없는 질주도 아름다웠다.

국가 간 메달 경쟁도 치열하다. 스포츠가 체제경쟁을 대신하던 시절에는 국제 스포츠 무대가 살벌했다.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한 냉전시대에는 스포츠를 전쟁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결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다.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그랬다. 다른 나라에는 져도 북한에는 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종합순위를 따지는 것도 체제 경쟁의 산물이다. 어느 나라가 메달을 많이 땄는지 종합 순위를 매기고 국가의 위상을 따졌다. 그래서 국가별 메달 수가 몇 개고 종합순위가 어떤지 촉각을 곤두세웠고 대회가 끝나면 종합순위를 따져 성공 여부를 판단했다.

하지만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도 종합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우리는 언론에서 예전의 버릇대로 종합순위를 따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 국가 대표들이 나서 경쟁을 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취고 영광이다.

올림픽의 개최 주체도 국가가 아니고 도시다. 소치 올림픽이지 러시아 올림픽이 아니다. 평창도 마찬가지다. 개최도시에서 책임지고 대회를 유치하고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적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최도시의 책임이 크다.

국가 간 종합순위보다는 각 선수 개인들의 참여와 경쟁이 더 중요하다. 자국 선수를 응원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종합순위를 매겨 나라의 위상을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 크게 보면 국가와 인종, 문화와 종교 등을 초월해서 전 인류가 스포츠로 화합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올림픽의 정신이다. 스포츠에 과도한 국가주의가 개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이번 쇼트트랙의 부진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쇼트트랙은 나가기만 하면 메달을 따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불운이 겹쳤다고 하지만 불운이 아니라 실력 탓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장애들이 무수히 나타나고 그것들을 잘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다.

이번에도 메달을 주렁주렁 걸었더라면 문제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떼 논 당상인 줄 알았던 메달을 다른 나라 선수들이 다 가져가고 한때는 우리의 대표였던 선수가 남의 나라 국기를 앞세우고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문제가 있다고 몇 년 전부터 말이 나왔는데도 꿈쩍 않고 있다가 대통령이 나서고 국민들이 아우성을 치니까 개혁을 하겠다며 나서는 문체부도 볼썽사납다. 내막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어린 아이들까지 나서 그가 금메달을 따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고 했다. 철없는 중학생들도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런데도 문체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놓고 있었다.

잘 한 것은 잘 했다 박수 쳐주고, 잘못 된 게 있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 잔치는 끝나도, 고칠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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