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흉노 토벌에 나간 이광의 부대는 패하여 그 자신마저도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선우는 일찍부터 이광의 명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잡으면 산 채로 데려오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해 놓았었다.

이광이 포로로 잡혔을 때는 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그는 흉노 병사들에 의해 두 마리의 말 등에 설치한 들것에 실려 가고 있었다. 얼마쯤 가다가 때마침 그의 곁에 보기 드문 준마를 탄 소년을 발견하고 이광은 단번에 준마 등으로 날아 뛰어 소년을 밀어뜨리고 빼앗은 활로 적들에게 퍼부으며 무사히 자기 진영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장안으로 돌아온 이광은 조정 관리에 의하여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광은 많은 부하 장병을 잃었고 스스로 포로가 되었다 하여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속죄금을 물고 평민이 되었다. 그 뒤 수 년 동안 이광은 고향에 틀어 박혀 있었다. 영음후 관영의 손자 관강과 함께 남전의 남쪽 산 속에 살면서 사냥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이광은 하인을 데리고 외출하여 이웃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패릉정 앞에 이르자 술에 취한 관리가 큰소리로 수하하면서 길을 비키지 않았다.

하인이 말했다. “이 분은 전에 장군이시던 이광 어른이시다.”

그러자 관리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현직 장군도 야간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하물며 옛날 장군 따위는 보낼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이광은 하룻밤을 패릉에 가두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뒤 흉노가 요서에 쳐들어와서 채수를 죽이자 장군 한안국이 도망을 쳤다. 그 책임을 지고 한 장군은 우북평으로 좌천이 되었다.

그러자 경제는 이광을 불러 우북평 태수로 임명했다. 그 때 이광은 패릉의 그 관리를 임지로 데려 가서 그의 목을 잘라 치욕을 복수했다.

이광이 우북평 태수로 왔다는 정보는 즉시 흉노의 귀로 들어갔다. “한나라의 비장군이 왔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두려워 수 년 동안 우북평으로는 쳐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이광이 사냥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풀숲에 있는 바위를 호랑이로 잘못 알고 쏘니 화살이 박혔다. 다가가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바위였다. 그는 바위를 향해 다시 활을 쏘았으나 아무리 쏘아도 두 번 다시 박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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