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과거사 묻고 안보역점 주장
아시아 패권 위한 무지와 무례의 극치
세계평화 위해 한반도 독트린요구

 
지난 13일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시 말해 한일 간의 과거사는 제쳐두고 시급한 안보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주문이다. 갈수록 이와 같은 주문의 기류가 짙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일 간의 냉각기류가 지속되면 한일의 과거사문제로 인해 한국은 반일(反日) 친중(親中)’의 정서가 형성되고, 나아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미국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사적 흔적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 인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게 훤하다는 계산에서다.

특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시기인 4월을 앞두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중재노력은 보다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질서유지를 빌미로 일본의 과거사문제 해결 없이 미국의 한미일 공조만을 위한 한일관계 개선 강요는 오히려 한미동맹과 안보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우려로만 바라봐선 안 될 것 같다. 적어도 안보를 위한 조치라면 말이다.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대해 한국 국민은 물론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한미 안보와 동맹이라는 명분에 함몰돼, 그동안 인내하며 지켜오고 강조해 오던 대일관계노선에서 급선회해 미국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무기력한 조치가 이뤄질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3.1절을 앞둔 시점에서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해결 없이 미국의 입장에 속절없이 끌려갈 수만은 없는 게 한국정부가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한반도 주변정세로 인해 형성되고 고착화된 패러다임(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을 깨고,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신 패러다임을 선언해야 할 때를 시대적으로 맞이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의 의사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에 속절없이 지속돼온 족쇄와 같은 한반도를 둘러싼 패러다임, 이제는 과감히 동북아의 신질서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트린(국제관계에서 자국의 정책상 원칙을 표명한 것)’이 필요할 때다.

지금 진행되는 미국의 행보를 통해 미국의 전략과 팽창주의가 특히 우리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잠시 엿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익히 미국은 프런티어와 그 프런티어 정신(the frontier)을 명분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내쫓으며 신제국을 건설하면서 오늘에 이른 나라다. 이러한 미국의 개척문화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팽창주의로 발전하며,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뒤를 이은 신 개념 제국주의로 또 다른 식민문화를 형성하며 오늘날까지 세계를 주도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가장 직접적이며 중대한 영향을 받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19세기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던 영국은 섬나라 일본과의 동맹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게 했고, 이는 일본의 한반도 장악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러한 역학 관계 속에서 황금의 땅인 아시아 진출을 꾀하던 미국은 자연스레 한반도에 발을 들여 놓으며 패권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 예가 1905년 을사늑약이 있던 그 해에 진행된 또 하나의 수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이 밀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일제의 그늘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게 됐고, 미국은 계획대로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무혈 입성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열강들의 패권 경쟁은 해방 후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는 계기가 됐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상흔을 남기는 원인이 됐다.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19월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대일강화조약)’의 결함 즉, 해방 후 일본으로부터의 도서(島嶼) 반환 목록에서 독도를 제외시키는 데 미국의 암묵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오늘도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관련 지난달 31일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미국의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의 데이비드 브라우어 센터에서 동아시아의 변화하는 다이나믹스와 한국정치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후, ‘샌프란시스코조약서 독도가 제외된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고 미국 측에 강하게 요구했다는 데는 주체적 사상을 가진 한국 정치인으로서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한 적절한 메시지였다고 봐진다.

외세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요지부동의 질서, 4자 또는 6자로 불리는 이 족쇄를 마치 운명처럼 여기는 이 나라와 정부는 하루 속히 그 굴레를 벗어 버려야만 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무지하고 무례하고 오만하기까지 한 주문은 한반도와 한국의 안녕과 질서가 아닌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패권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 유지해 나가려는 이기적 발로에서 기인된 야욕적 성격이 다분히 내재돼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 이제 명심할 것은, 결코 국수적 사고(思考)와 발상(發想)에서가 아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진정 요구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의 방법과 계산으로 또 세계평화의 비전으로 동북아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신 개념의 독트린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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