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깨달음(法) ‘4차 결집(結集)’ 과정에서 교파별 교리 해석차로 수많은 경전 탄생

 

▲ ⓒ천지일보(뉴스천지)

불교 경전의 유래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는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는 6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Buddhagaya)에서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4체(四諦)·12연기(十二緣起)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8정도(八正道)이다. 이후 붓다는 깨달음을 법(法, Dharma)이라 하고 이 법을 제자들에게 최초로 설법(說法)을 하게 된다.

이로써 불교의 경전이 시작된다. 불경(佛經)은 붓다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불교의 경전이다. 붓다의 말씀을 담은 불교경전은 삼장(三藏, 경장·율장·논장)이라는 3가지 체계로 분류된다.

경(經)장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았다. 율(律)장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이다. 논(論)장은 이름 있는 논사(論師)들에 의해서 쓰여진 경전의 해석이나, 그의 불교 사상을 적은 글이다.

경전 해석차로 불경과 교단분열

 

▲ 불경 담은 상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불경에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근본경전과 대승불교의 발흥과 함께 나타난 대승경전이 있다. 근본경전은 북방불교권에 전해진 한역(漢譯) ‘아함경’과 남방불교권에 전해진 상좌부 전승의 ‘빠알리 니까야’를 가리킨다.

아함이란 본 뜻은 ‘전승(傳承)’인데,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전승되어 오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리고 ‘빠알리’는 성전(聖典)을 의미하고 ‘니까야’는 수집(收集)을 의미하므로 ‘빠알리 니까야’는 ‘성전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아함경은 4부로 되어 있고, 빠알리 니까야는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붓다가 열반한 후 불교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승려와 신자들의 수가 양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의 가르침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게 됐다. 교단의 분열은 계율 해석상의 차이에서 시작됐지만 교단이 분열되자 경의 해석에도 부파마다 다른 견해를 갖게 됐다.

그 결과 각 부파는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아비달마(abhidhamma)라 불리는 독자적인 교리해설서, 즉 논(論)을 편찬하였다. 아비달마란 붓다가 설한 ‘법(dhamma)에 대한(abhi) 해석’이라는 의미이다.

이들 논서(論書)를 통해 각 부파는 자신들의 해석이 진정한 붓다의 뜻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불교는 사상적으로도 분열 대립하게 된다. 이렇게 부파에 의해 분열 대립하게 된 불교를 부파불교 또는 아비달마불교라고 부른다.

불교경전 4차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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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은 부처님 입멸 후 4차례의 결집(結集)을 통해 이루어졌다. 불멸 후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의 말씀이 산실(散失)되지 않도록 하고 또한 교권(敎權)의 확립을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외워 내어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집대성해 바른 가르침이 전승되도록 한 것이 결집의 취지였다.

 

당시는 문자로 정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합송(合誦, 신자들이 모두 같은 말씀을 소리 내어 외움)함으로써 말씀을 전승했다.

그러한 이유로 결집은 합송이라 부르기도 했다. 제1결집은 불멸 후 백 일이 채 못 되어 라자가하(王舍城) 교외의 비파라산에 있는 칠엽굴(七葉窟)에서 교단 제일의 장로인 대가섭존자(大迦葉尊者)를 상수(上首)로 5백 명의 비구가 모여 거행했다.

이 결집은 7개월에 걸쳐 다문(多聞) 제일인 아난다존자가 법을, 지계(持戒) 제일인 우파리존자가 율(律)을 암송해 낸 것을 모두 확인해 불설(佛說)이라고 승인한다. 이를 왕사성결집, 오백결집이라고 한다.

제2결집은 불멸 후 약 1백년경에 계율 엄격주의자인 야사(耶舍)의 제의로 7백 명의 장로 비구가 베살리에 모여 계율에 관한 당시의 십사비법(十事非法. 그릇된 주장)을 바르게 하고자 한 결집이다.

베살리성결집 혹은 칠백결집이라 부르는 이 결집은 8개월간 십사비법(十事非法)에 관해 논의해 유법(遺法)의 전체가 교정됐다. 그러나 십사의 논쟁은 교단을 야사를 중심으로 한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나누는 ‘근본 분열’을 가져와 부파불교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다.

제3결집은 불멸 후 2백년경 외도들로부터 불교를 보호하기 위해 아쇼카왕(阿育王)이 제수존자를 상좌로 하여 1천 명의 비구가 모여 법장을 송출하고, 제수존자 다시 스스로 논사(論事) 1천 장을 지어 이의사설(異議邪說)을 격파했다.

9개월간 논의한 끝에 이루어진 제3결집은 화씨성에서 이뤄졌다고 해서 화씨성결집, 일천결집이라 부른다. 3차 결집 후에 구전돼 오던 경전이 비로소 문자화 됐으며, 경·율(經律) 외에 논장(論藏)도 결집된다.

제4결집은 불멸 후 6백년경 대월씨국 카니시카왕이 부파의 이설(異說)을 통일시키고자 협존자에게 의뢰해 이루어진다. 세우존자(世友尊者)를 상수로 5백 명의 대비구들이 모여 경·율·논장의 주석서 30만송(頌) 660만언의 대주석을 만들어 결집했다.

한국불교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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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파된 때는 기원전 1세기경이며 이는 붓다가 열반 후 500여년이 지난 때이다. 그리고 기원후 372년에 중국의 전진국(前秦國)의 왕 부견(符堅)이 사신 승려 순도(順道)를 통해 불상(佛像)과 불경(佛經)을 고구려에 보냄으로서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다.

 

당시 인도에서는 이슬람의 침입으로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대승경전이 소실됐다. 때마침 중국에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이 있어 한국으로 불경이 전래된 것이다. 중국 불교가 한국 불교에 여러 방면에 있어 영향을 끼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수많은 불경을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1237년 고려 고종 24년에는 고려에 침입한 몽고군의 격퇴를 발원(發願)해 16년간에 걸쳐 8만여 개의 판에 8만 4천 법문을 담은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수많은 불경이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종파로 나누어진 불교는 각 종파마다 소의경전이 있다. 소의(所依)는 의지할 바 대상을 의미하며, 소의경전은 개인이나 종파에서 신행(信行)·교의(敎義)상 근본 경전으로 삼아 의지하는 경전을 말한다.

소의경전은 불교에만 있는 개념이다. 한국불교의 최대종파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宗憲)에서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태고종은 금강경과 화엄경을, 화엄종은 화엄경을, 천태종은 법화삼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진각종은 대일경·금강정경·대승장엄보왕경·보리심론·실행론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각 종단은 소의경전을 통해 중생들이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설파하고 있으며 많은 불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경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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