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우리말 국어(國語)가 참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글을 익혀 말하고 쓰기를 수십 년간 해와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 국립국어원의 국어능력 평가에서도 그 사실이 입증된다.

국민 중에서 대학에 다닌 경험이 있는 대재(大在) 이상 학력자를 상대로 국어의 듣기·말하기·읽기·쓰기·문법 등 5개 영역별 문제 풀기 방식으로 국어능력을 측정해본 결과, 절반가량이 기초수준이거나 그보다 낮다는 믿기지 못할 조사 결과가 나왔다. 평가 대상자들이 어느 정도는 엘리트들인 만큼 국어능력 수준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놀랍다.

우리말 듣기나 말하기, 문장 이해력 등은 국민 소통 문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의사소통은 각종 사회현상에 대한 개인의 인지나 판단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다. 국민 개인이 사회현상과 현안 과제에 대해 맥을 짚어 명백히 이해하고 바른 판단으로 대안을 수용함이 바람직한데, 국민의 국어능력, 이해력 취약은 우리 사회의 난제들이 닥칠 때마다 우왕좌왕하게 되고, 타의에 의해 조작이나 왜곡 현상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앞에서 필자가 장광설(長廣舌)하는 것은 자칫 국민의 국어능력 부족이 우리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는 어떤 제도나 사안에 대해 겉치레로 대충 알고 지나가거나 자신과는 무관해 관심을 갖지 않을까하는 기우(杞憂)에서다. 그런 사안 가운데 하나가 ‘지방자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 자신을 비롯해 이웃들이 일상화된 지방자치시대에 살면서도 주인으로서 자긍심이나 관심을 갖지 못한 채 주변인(周邊人)에 머물게 되는 현실적 한계가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지방자치는 지방이 자주적인 입장이 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다.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돼 실시되다가 5.16 군사쿠데타로 정지가 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쳐 1991년 지방의원선거로 지방의회가 구성됐고, 1995년 자치단체장이 주민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됨으로써 지방자치는 모습을 갖췄다. 지방동시선거를 통해 지방자치가 실현되고 있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명목상 지방자치이지 지방이 독자적으로 지방의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또한 지역주민이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온전한 지방자치는 아닌 것이다.

지방자치가 재개된 1991년부터 치더라도 이제 성년이 된 지방자치 평가에 대해선 양면성이 있다. 정부나 중앙정치권에서는 지방자치가 성공을 거두고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지방과 지방자치학자들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자치권이 온전한 게 아니라 반쪽 지방자치라고 평가 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지방자치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지역주민들은 중앙정치의 하수(下手)로 변질돼도 지방자치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없다. 그저 꿀 먹은 벙어리다.

지방자치 가운데 주민자치보다는 단체자치의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지만 “지방의 일은 그 지방 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라는 지방자치 본래적 의미는 같을 것이다. 지방의 일이란 지역의 문제, 지역의 행정 등을 가리키며,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의 일을 남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기의 의사와 자기의 힘으로 독립적·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지방자치는 지방의 정치·행정을 주민 또는 주민 대표자를 통하여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의미다.

전국 자치단체의 2013년 말 지방재정자립도는 51.1%이고, 자주재원(지방세+세외수입)으로 직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수두룩하다. 그런 입장이니 중앙의 재정통제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자주입법권도 마찬가지다. 조례조차 법령의 구체적인 위임이 없으면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자치권이 온전히 지켜지지 못해 중앙정치에서 쥐락펴락하는 무늬만 지방자치임은 관심 있는 자라면 손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런 입장임에도 중앙정치권과 중앙정부는 지방자치 옥죄기에 바쁘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유야무야(有耶無耶)될 지경에서 국회의원들은 기초단체장과 의원 길들이기 수단이 되는 의원특권이 이어지기를 계속 원하는 눈치다. 지방자치를 지원할 의무가 있는 중앙행정기관인 안전행정부는 지방에 실제적 도움을 줄 자주입법권의 범위 확대나 재정확충 문제는 뒤로 한 채, 명분을 붙여 재정통제하기에 앞장서니 ‘지자체 파산제’가 그렇다.

지방재정의 건전화를 위해 “선출직 지자체장이 재정운영을 잘못할 때 최후의 제재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명분은 좋다. 하지만 이 제도는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진했다가 지자체와 야당의 반대여론에 밀려 철회한 적이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지자체 파산제도가 지방제도의 본질인 자치권을 침해해 지방자치의 근간을 통째로 흔든다는 게 핵심 문제다.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의해 멋대로 훼손되고 있는 지금, 지자체 파산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지방자치의 본질인 자치권의 완전한 보장이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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