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영어교육 방안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대학입시 자기소개서에 토익·토플 등 공인영어성적을 기재하면 서류전형 점수가 0점으로 처리된다는 것을 비롯해 영어 독해와 작문, 심화 영어회화 영역은 시험 출제 범위에서 제외하겠다는 것도 그렇다. 지문 분량을 줄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한다.

교육부가 유치원 및 사립초등학교의 영어 몰입 교육을 금지하겠다는 발상도 결국 영어 사교육의 단가만 치솟게 할 뿐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교육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생각 외에 영어가 얼마나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지 그래서 어떻게 공교육을 통해 영어교육을 효율화 시킬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영어교육에 몰입하는 이유를 교육부만 정말 모르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학부모들이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는 건 단순히 수능영어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의 유용성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공교육만으로 영어 학습이 충분히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중학교부터 치러지는 영어시험은 그야말로 완벽한 영어회화를 해야 백점 맞을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된다. 이때부터 주변의 말을 듣고 사교육을 시켜온 학부모와 정부의 말을 믿고 소신껏 사교육을 시키지 않은 학부모들의 희비가 갈린다. 공교육만 믿은 학부모들이 받는 느낌은 실망감이 아니라 배신감이다.

지금 영어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학년별 영어성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막연히 ‘쓰기, 읽기, 듣기, 말하기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당 학년에서 알아야 할 단어와 쓰기, 말하기, 듣기, 읽기 수준에 관한 예문과 시험문제 예시를 만들어 교과서와 같이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가 영어교육에 대해 막연한 기준만 제시하고,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으니 학부모와 학생들은 당장의 시험점수에 놀라 학원을 전전하게 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스스로 멀리 내다보고 공부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고, 자료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부의 가장 근본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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