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개인과 사회,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변화무쌍한 대천세계가 펼쳐진다. 인간은 무궁무진한 사회현상과 자연현상의 배후에 어떤 연관과 원인이 있는지를 탐구하려고 했다. 이 욕망은 지적탐구에서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만유영혼을 믿는 사람은 초자연적 신비한 힘이 만물의 작용을 주재한다고 믿는다. 무속에서 현대 대중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초자연적 신비주의이다. 사람의 감각적 능력을 믿는 사람은 이성적 사유로 삼라만상을 인식하려고 한다. 그들은 대천세계에 일정한 규율이 있다고 믿으며, 초자연적 역량은 이성적 사유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사유방식의 분기와 모순이 인류의 모든 문화적 충돌을 유발했다.

춘추 말에서 전국 초기 군웅들이 난립하자 절대적 존재를 받들던 현상도 변했다. 난세는 지배층에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압박했다. 조석으로 변하는 난세의 길흉화복이 신앙적 전일성(專一性)을 불신하게 만들자, 사람들은 다양한 기원의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일신교는 중국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신령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회의 합리적 인식을 각성하게 만들었다. 사상은 맹목적, 미신적인 성격에서 독립적, 회의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고대 중국의 인문주의는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성취되었다. ‘인문(人文)’이라는 용어는 휴머니즘의 번역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역경의 22번째 괘인 천지비괘(天地賁卦)가 출전이다. 천지는 신성을 잃었고 만물을 낳고 기르는 자연으로만 인식되었다.

노자, 공자, 묵자가 주도한 사학(私學)이 경험과 이성을 중시하자, 신도설교(神道設敎)는 주류의 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초자연적 힘이 인간사에 개입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의심과 추리로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진리도 억측일 수 있으므로 인식, 분석, 연구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시초점과 거북점으로 이론과 사상의 근거를 찾지 않고, 오로지 경험을 통한 사실을 기초로 이성적 분석을 실시하면서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과 맞섰다. 노자는 대립하고 전화(轉化)하는 발전규율에 따라 초자연적 힘의 존재와 지배를 부인했다. 노자 도론의 핵심인 ‘무’에는 신과 귀신이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우주의 본원은 무차별적이고 절대적 균질 상태이며, 대천세계의 생산, 변화, 발전은 물질세계 자체에서 동력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공자는 주역과 상서 홍범(洪範)에서 종교적 성분은 과감하게 잘라내고 철학적 사유만으로 괘효(卦爻)의 변화를 설명하며 사물의 일반적 규칙을 찾으려고 했다. 묵자도 역시 점복과 오행상승이라는 형식의 틀을 완전히 부정했다. 풍부한 실천적 경험을 지녔던 묵자는 오행의 상극에 따른 종시순환론(終始循環論)이 사물의 인과관계를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철저한 경험론자였다. 그는 물질적 재료, 기하학적 형상, 속성과 기능 등 일정한 방식에 따라서 사물을 분류하고 개념화함으로써 사물의 본질과 연관된 인식의 기초를 마련했다. 묵자는 사람들이 감각기관으로 경험한 사실을 시초점이라는 불확실한 미신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적 각성으로 자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높아졌고, 사람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개인의 주체의식과 자신감이 강화되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기의 감각과 이성적 사유를 믿게 되자 다시는 불분명한 신령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자연과 사회에 대한 그림이 완전히 변했다. 각 사회계층은 각자의 위치를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의 위치에 따라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묘사했고, 갖가지의 이상세계를 그리며 자기의 희망을 거기에 담았다. 노자, 공자, 묵자는 복서(卜筮)라는 미신적 방식을 잘라냈다. 서주(西周)의 관학을 부정한 제자백가는 이성으로 미신을 부정했다. 과학과 민본주의가 우매함과 전제주의를 대체한 고대판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성은 이후의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을 뿐더러 무수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성이 인류를 구원하지 못하자, 세상은 다시 당혹함과 혼란으로 소란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영성혁명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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