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기차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도입부다. ‘하얘졌다라는 아름다운 번역에 무릎을 친다. ‘하얘졌다라는 단어가 적당하다는 느낌이다. ‘하얗게 됐다하얗게 변했다라는 말보다 훨씬 실감나는 단어이니까.

입춘 지나 쏟아진 대설로 인해 온 세상이 하얘졌다. 눈 덕택에 강원도 태백산도 순백(純白)의 툰드라로 바뀌었을 것이다. 바람이 눈발을 날려 만들어낸 설화(雪花). 수백 년의 풍상(風霜)을 견뎌온 눈꽃들을 감탄 속에 바라보고 있었어야 할 지난 일요일. 영동지방에 내린 폭설 때문에 통행이 쉽지 않다는 일기예보를 핑계로 아파트에서 꿈꾸어 본 단상(斷想).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불리는 태백산 정상의 주목 군락들이 지금쯤 더욱 신령스런 분위기로 서 있을 것이다. 마치 불국토(佛國土)에 선 듯.

중국 당나라 때 빼어난 선풍(禪風)을 휘날리며 선학(禪學)의 황금시대를 이끈 스님이 마조 도일 선사이다. 앞서 그에게는 나중에 힘센 말 한 마리가 태어나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선지식들의 예언이 있었다. 예언대로 수십 명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 이 때 마조스님 휘하에 뛰어난 재가거사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방온(龐薀)거사가 뛰어났다. 원래 거사는 부자였는데 활연대오한 후 모든 재산을 이웃에 나눠주고 돗자리를 짜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초연하고 유유자적한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한다.

방거사가 절에 머물다 떠나게 되자 산문 앞까지 십여 명의 선객들이 배웅했다. 그 때 마침 함박눈이 내리자 거사가 말했다. “멋진 눈이로고. 눈송이 하나하나가 별다른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 때 한 선객이 물었다. “그럼 어느 곳으로 떨어진다는 말입니까?” 거사는 선객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러고도 그대가 선객이라 불린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사님이라면 어떻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방거사는 이 말에 또 한 대 그에게 따귀를 올려붙인 뒤 말했다. “눈을 뜨고도 장님과 같고 입이 있어도 벙어리나 마찬가지구나.”

따귀라니, 무슨 의미였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무아(無我), 혹은 나아가 진아(眞我)의 세계를 거니는 방거사. 그에게는 분별심도 차별심도 없었다. 스스로가 이미 부처이고 만나는 모든 이가 부처이며 온 세상이 불국토였을 것이다. 다른 곳 아닌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불국토이고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 못한 제자가 엉뚱한 질문을 했으니 어서 정신차리라고.

내친 김에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란 말로 유명한 임제의현 스님의 법문 내용을 소개한다.

불법은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 않는 데 있다. 꾸밈이 없는 평상의 자유로움, 있는 그대로의 삶, 화장실 가고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쉬는 데 있다. 이 말에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웃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꾸밈없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선지식들도 말하기를, ‘밖을 향해 공부를 짓는 것은 어리석다. 밖에서 오는 것은 언젠가는 흩어지고 떠나버릴 것이며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진실의 눈이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도를 구하는 여러분! 어느 곳에서나 주인공이 되면 그가 서는 어디나 다 참되다.”

금강경에 불국토에 관한 부처님의 설법이 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보살은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미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민다고 하는 것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므로 아름답게 꾸민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은 그와 같이 청정심(淸淨心)을 내어야 한다. 형색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하고 소리, 냄새, ,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집착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이다(應無所柱 而生其心).”

이런 어려운 얘기를 쉬운 현대말로 바꿔 제자들을 이끄는 친구가 있다. 월곡동의 한 중학교 교장인 그는 학교 곳곳에 긍정과 공감이라는 표어를 써 붙여 놓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가 겨냥하는 것이 모든 생명을 분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은 선지식들의 정신과 굳이 다르다고 할까. 각자가 삶의 주인이고 만나는 모든 이가 부처, 온 세상이 불국토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만 같아 존경스럽다.

가뜩이나 꽁꽁 언 서민들의 삶에 폭설이 내려 이마에 주름살만 더욱 늘어나는 갑오년 겨울. 주위엔 전세대란에, 치솟는 물가에, 천문학적인 교육비에, 날이 갈수록 더 힘들다는 푸념들만 들린다. 그러나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다는 시인 쉘리의 말처럼 봄은 끝내 오고야 말 것이다. 지금 봄이 아니라고 집에서 웅크린 채 세월만 탓하고 있으랴. 함박눈 내리는 모습을 즐긴 방거사가 되어 보자. 겨울이 다가기 전에, 눈이 녹기 전에 태백산 주목이라도 한번쯤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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