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4년 전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0m서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기적 같은 은메달을 따냈던 이승훈은 다윗이었다. 쇼트트랙 종목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환한 지 7개월밖에 안된 풋내기 선수였던 이승훈은 강력한 네덜란드와 유럽 선수들의 위용 앞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필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월한 심폐지구력, 쇼트트랙 선수로 다져진 매끄러운 코너링, 역도선수도 혀를 내둘렀던 강도 높은 역도 훈련 등으로 무장한 이승훈은 체격 조건이 월등히 좋은 유럽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이 종목서 우승후보 스벤 크라머가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승훈은 한국의 첫 메달 신호탄을 알린 은메달을 획득했다.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도저히 어려울 것으로 봤던 장거리 종목인 5000m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보완해 값진 결실을 맺었던 것이었다. 이승훈은 1m서는 크라머가 자기보다 앞선 기록을 올리고서도 코스를 잘못 도는 바람에 행운의 금메달까지 낚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성경 속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그대로 현실로 재현한 듯했다. 3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양치기 소년이 돌팔매질 하나로 위대한 거인 전사를 쓰러뜨렸다. 이 이야기는 이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로 불리며 거인과 약자의 싸움으로 회자되어 왔다. 최근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 아니라 상처 입은 다윗에 의해 발전했다며 다윗은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최대한 살려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 이승훈은 분명 다윗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4년 후 예상했던 다윗의 승리는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첫 메달 사냥의 기대를 걸고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 출전했던 이승훈은 한층 두터워진 네덜란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으며 자신의 기록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62561을 기록해, 4년 전 61695보다 뒤졌으며 자신의 시즌베스트 기록(60704)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기록종목에서 큰 이변이 없이 평소 개인기록이 실전에서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다윗이 왜 이런 모습으로 추락한 것일까? 이승훈의 이번 경기 모습을 철저히 분석해보면 원인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컸지만, 실제적으로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다. 이는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 시작 전 프랑스 고지대에서의 전지훈련과 네덜란드 헤렌빈에서의 적응훈련을 거친 뒤 대회 수일 전 소치에 입성한 이승훈은 이미 몸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자신의 강점을 더욱 살리는 방향으로 훈련의 중점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골리앗의 본 바닥에 스스로 찾아가 기가 꺾이고 자신감마저 잃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기에서 마지막 13조에 편성됐던 것도 그의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앞서 경기를 가진 네덜란드 크라머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는 등 네덜란드 선수들이 파죽지세의 좋은 기록을 올린 것에 주눅이 든 이승훈은 평소 기록에서 월등히 앞선 독일 선수에게도 뒤지는 경기력을 보였을 정도였으니까.

강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약자 다윗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커버할 나름대로의 비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승산이 없다. 성경의 양치기 소년도 평소 양을 노리는 사자나 늑대 등 짐승 등을 쫓아내기 위해 단련된 돌팔매질로 골리앗의 치명적 약점인 양미간을 가격해 한 번에 쓰러뜨려 약자의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강자 골리앗의 힘이 영원하지 않듯이 약자 다윗의 지혜도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히 통할 수 없다.

이승훈이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스포츠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한번 새겨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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