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박노해 작품. (사진제공: 박노해 사진전)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 6개국 120여 컷 흑백사진 선봬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녹음을 상징하는 듯 초록배경으로 가득한 전시장 내부. 지도에서도 나오지 않는 마을로 ‘다른 길’을 선사하고 있는 전시장은 우리에게 흑백필름으로 파키스탄부터 인도네시아까지 총 6개국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이 5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노동의 새벽’의 시인으로 1980년대 권위주의 시절, 민주투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던 박노해 작가.

참혹한 고문 끝에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돼 7년여를 감옥에 갇혀있던 그는 민주화 이후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박 작가는 그동안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며 정직한 자기성찰과 함께 지구시대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에 착수해왔다.

스스로를 체제의 경계 밖으로 추방해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박노해.

박 작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가장 인간성이 쇠약해진 시대. 가장 지식이 많고 똑똑해진 시대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 가장 개인 자유와 권리가 많은 시대이지만 가장 무기력한 인간의 시대. 가장 세계와 연결된 시대이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가장 멀어진 시대”로 현재를 평했다.

이에 박 작가는 서구 중심의 ‘성장과 진보’라는 세계관을 넘어 아시아 토박이 마을 삶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남은 희망의 종자를 채취하듯 자신의 ‘다른 길’을 통해 아시아를 찍고 글로 썼다.

이번 ‘다른 길’ 사진전에서 보여 주는 아시아는 눈물의 땅이라 불리는 아시아의 내면을 그린 것도 아니고 막연한 그리움과 신비화된 오리엔탈의 아시아도 아닌 ‘좋은 삶의 원형’이자 ‘희망의 종자’가 남겨진 땅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시아 특유의 정신과 삶에 묻어나는 ‘순환’ ‘순수’ ‘순명’을 찾아 박 작가는 공식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곳들에 발길을 옮겼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지도에서 사라지면서 우리 눈에서도 ‘사라진 사람들’이다.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으며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토박이들.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박 작가는 흑백필름에 담았다.

박 작가가 인도네시아 가파른 비탈 밭, 라당을 일구는 여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아이가 농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녀는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박 작가의 사진 속 사람들은 똑같은 길로만 질주하며 위기에 빠진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 ‘다른 길’ 사진전은 티베트 파키스탄 인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 총 6개국의 엄선된 120여 컷 작품이 정통 흑백 아날로그 인화로 관객을 맞는다.

또 가수 이효리와 윤동현 등 유명인들이 목소리 재능기부로 이번 사진전의 작품을 해설하는 영상제작에 참여해 눈길을 끈다.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은 오는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진행되며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티켓은 현장과 인터파크 온라인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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