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선수들의 환호, 그것은 또 다른 볼거리다.

경기 뒤의 보너스 이상으로 선수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한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환호하는 선수들의 맑고 깨끗한 역동적인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 환호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지난 8월 미 PGA 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골프 사상 첫 메이저대회 대관을 거머쥔 ‘제주도 사나이’ 양용은은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18번 그린 위에서 캐디백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 최강 타이거 우즈를 꺾고 믿어지지 않는 우승을 차지한 기쁨을 양용은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례적인 우승 세레모니로 답례를 한 것이다. 양용은의 ‘캐디백 세레모니’는 이색적이었지만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동안 골프에서 대부분의 우승자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골프팬이라면 IMF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1998년 박세리가 미 LPGA US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을 선보이며 태국계 추아슈리퐁을 연장 서든데스 끝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뒤 한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피겨 요정’ 김연아의 ‘눈물환호’는 전 국민을 들뜨게 해주었다. 금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사상 처음으로 피겨 싱글부문 금메달을 확정한 뒤 김연아는 시상식에서 기쁨의 눈물을 촉촉히 흘려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올해 세계수영 선수권대회에서 예선탈락을 해 아쉬움을 주었지만 ‘마린보이’ 박태환의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정복순간은 두고두고 보아도 좋을 명장면이었다. 자유형 400m에서 예상치 못한 1위를 차지하는 순간 박태환은 두 팔을 높이 들어 기뻐했다. TV를 지켜본 대부분의 국민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박태환의 장한 거사에 같이 환호했다.

‘살인미소’로 베이징 올림픽에서 스타덤에 오른 배드민턴의 이용대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코트 위에 누워버렸다. 배드민턴과 탁구 등 실내 종목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주 보여주었던 환호의식이었다.

선수들의 환호하는 행동들은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기보다는 인류에게 진화된 생존기술이라는 연구결과도 있기는 하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2004년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한 선천성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경기 후 반응을 연구한 결과 선수들의 환호하는 모습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생존기술인 동시에 그동안 느꼈던 두려움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과학적으론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환호의 미학’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우승을 차지하거나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의 환호하는 모습이 다양한 것은 그들만의 다양한 스토리가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승자로 올라서는 순간, 훈련할 때의 땀과 눈물, 경기에서의 극한 긴장감 등 인생의 ‘희로애락'이 제각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거기에는 꿈과 낭만, 좌절과 아픔, 성공과 실패 등 인간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선수들의 환호하는 모습에서 인생의 숭고한 가치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스포츠 시즌도 바야흐로 결실의 시기를 맞고 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정상을 향해 숨 가쁜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올가을에도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 이긴 자의 환호를 스포츠팬들은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새로운 스토리를 쓰며 정상에 오르는 승자의 모습과 숨겨진 인생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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