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 추모 붐이 일고 있다.

안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뮤지컬 ‘영웅’이 다음 달 개막을 앞두고 있고 한 조간신문에는 그를 소재로 한 소설도 연재 중이다. 순국 100주년이 되는 내년이 되면 아마도 각종 이벤트가 더 줄을 이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안 의사 재조명 열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심스러운 일이 최근 빚어졌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의사님의 동상이 국회에 사실상 방치된 사건이다. 사단은 이렇다. 

재중 사업가 이진학 씨는 2006년 1월 16일 중국 하얼빈 광장에 안 의사 동상을 중국 당국과의 협의 없이 건립했다.

이 씨는 2005년 하얼빈을 방문한 당시 고건 총리가 하얼빈시 정부 인사들에게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에 안 의사의 동상을 세워 한국과 하얼빈의 각별한 인연과 안 의사의 정신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씨는 하얼빈에 투자한 한국 기업인으로서 마땅히 자신이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이 씨는 서울의 안중근기념관에서 자료를 얻고 안중근의사 숭모회 등 관련 단체 인사들을 만나 자문을 했다.

동상의 설계디자인은 육사 출신 현역장교에게, 조각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하얼빈 등빙축제 창시자이자 안중근 의사 숭모자인 하얼빈공대 양세창 교수에게 맡겼다. 높이 3m, 무게 1.5t, 청동 재질의 동상은 2억여 원을 들여 5개월 만에 완성됐다.

그러나 동상 제막 4일 후 중국 정부가 ‘외국인 동상을 실외에 설치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을 내세워 철거명령을 내리자 결국 이 씨는 11일 만에 동상을 철거했다.

이 씨는 일단 법적 절차를 밟기로 하고 동상을 인근 백화점 안 자신의 사무실로 옮겨 세웠다. 백화점 안으로 옮겨진 안 의사의 동상 앞에는 하얼빈을 찾은 한국관광객들의 참배가 줄을 이었다.
 
이 씨가 중국 정부에 동상 재건립 허가를 요청했지만 답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중 안 의사 추모운동을 펼치고 있는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대표 정광일)’로부터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동상을 서울로 옮기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 씨는 의거 100주년일인 10월 26일 서울에서  동상 제막식을 갖기로 하고 동상 수송을 계획했다. 8월 15일 광복절 아침, 하얼빈을 출발한 동상은 9월 1일 인천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상이 한국에 도착하면서 불거졌다. 당초 동상은 안 의사의 가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하얼빈 동상이 “안 의사와 얼굴이 다르다”는 등 작품성을 따지며 난색을 표명했다.

서울시도 시 규칙을 내세워 동상의 공공장소 건립을 반대했다. 이 와중에 하얼빈 동상은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됐고 이 딱한 소식을 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 경내에 임시거처를 마련해줘서 현재의 헌정기념관 앞에 가설돼 있는 상황이다. 후손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분명한 사실은 안 의사의 동상이 하루빨리 거처를 찾도록 중지를 모으는 일이다. 이 점에 관해 필자는 천주교가 책임지는 게 마땅하고 가능하다면 명동성당 입구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1896년 조제프 빌렘 신부에게 토마스라는 영세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또한, 그는 순국 직전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까지 한 독실한 신도였다.

두 번째는 일제의 천주교가 안 의사에게 가했던 부당한 대우를 반성하는 의미도 있다. 일제 당시 한국 천주교단은 안 의사를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신자 자격을 박탈했다. 또한, 당시 조선교구 뮈텔주교는 빌렘신부가 안 의사의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한국 천주교는 84년 만인 1993년에서야 안 의사를 천주교 신자로 복권시켰다. 그만큼 한국 천주교단은 안 의사에게 박정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성의 차원에서라도 천주교단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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