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32. 살후 2장의 배도자와 멸망자와 구원자는 누구인가? 거짓말하는 자는 마귀라고 하셨다. 거짓말해도 정통인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성경, 특히 신약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압축되고 집약된 내용을 담고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배도자와 멸망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공격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까지 하시면서 전하고 하셨든 그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10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흐름을 주의 있게 봐야 한다. 복음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도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 복음적 정신이 어떤 식으로 번지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참으로 복음에 매여 사는 자라면 결코 ‘사람의 종’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들의 요구보다 선행하는 요구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만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과 사도 사이에는 ‘복음 능력의 끈’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모든 지시와 명령에 들어있는 개념도 십자가 복음만이 최종 도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배도자와 멸망자의 정체는 뚜렷해진다. 사도가 전달받은 그 복음 외에 다른 것에 관심 두고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대중의 호응을 유도해내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다 배도자요 멸망자의 정체다. ‘복음 외에 다른 것’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목회자에게 있어 교회다.

교회란 목회자가 목회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보장해주는 단체이기에 교회가 부정되면 곧 자기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으로 이해되게 된다. 마치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자진해서 대중들의 지도자로 군림하는 것은, 일반 대중들이 바로 그런 계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보다 하나님의 계시 전문가들은 기도를 하거나 금식을 하거나 구제를 할 때에 어떤 식으로 행할까? 우리는 거룩한 성직자인 그들의 차분한 인도함을 받아서 시키는 대로 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믿음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줄거야’라는 의식이 선행되어 있다. 이점에 대해서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가차 없이 그 무지함을 가차 없이 공격하고 있다.

소위 그 당시 성직자들은 이러한 일반 대중들의 종교적 욕망과 무지성을 한껏 이용해서 자신의 그 방면에 전문가라는 사실을 세뇌시키고 인식시키기만 하면 소위 ‘영적 카리스마’로 그들 위해 정신적으로 군림할 수가 있다는 전통을 고수한 것이다. 이 전통은 모든 시대를 걸치고 꾸준히 살아있다. 이렇게 형성된 성직은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어 목회자의 가정이 노후까지 보장받는 자리가 된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가 집단이 되는 것이다.

예수 자체가 자신을 밥 먹여 살리는 상업적 간판으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점을 성직자들을 놓치고 싶지 않는 것이다. 젊을 때부터 바로 이 방면에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교회라는 이름의 평생직장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예수를 공격하면 용서해주나 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그 어떤 식으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성직자 그룹에서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들 생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치 마술사끼리 마술의 비법을 공개하면 그 집단에서 퇴출시키는 원칙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나서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게 되는데 이 테스트에서 이미 성직자 그룹은 그 정체가 밝혀졌다. 즉 악마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에게 제안했다. ‘돈을 줄 테니 나를 섬겨라, 인기 있는 성공한 목회자가 되게 해줄 테니 나를 섬겨라, 세상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줄 테니 나를 섬겨라’는 식으로 나온다.

그 누구도 이 유혹을 이길 수 없다. 따라서 목사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교인들에게 누구든지 현재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교단과 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이단이라고 교육 시키는 일이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심지어 기존 교회를 같이 이단이라고 공격하더라도 만약 그 손가락질이 나에게로 향한다면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부인이 안 되는 순간이 되면 누구나 항시 이단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앞서도 한 번 지적한 바와 같이 성경에 대한 배경이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구적 의미를 오늘이란 현실에 직선으로 연결 적용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인 일이다. 본 질문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를 쓰게 된 동기와 목적에 대해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 이후 불과 2,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때에 집필된 편지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교훈한 것(살전 5:3)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서둘러 기록한 것이 데살로니가후서다. 즉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밝힌 주님 재림에 대한 교훈을 곡해하여 생업을 포기하고 무위도식하는 폐단이 교회 안에 생겨졌던 것이다. 또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그와 같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살후 2:1-3).

본 질문은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에서 주고 있는 교훈이다. 곧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의 재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설명되었던 내용이다. 즉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먼저 교회가 주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배도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질 때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사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란 사실도 첨부되고 있다(살후 2:9, 10). 따라서 이 내용은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나 혹은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해석될 수 있는 말씀은 아니다.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는 2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영으로든, 말로든, 바울의 편지를 근거로 한 이야기든,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웠다고 성도들을 미혹한 자들을 가리킨 표현이다. 멸망자란 역시 이들을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강조된 ‘거짓말’이란 의미는 언제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 표현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 기생이나, 시아버지를 속인 다말도 거짓을 말한 것이 되고 잘못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그들의 그런 행위를 의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즉 성경에서 지적된 ‘거짓말’이란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가르치는 행위들을 지목한 표현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거짓말해도 정통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정통이 아닌 것처럼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합당한 표현도, 적절한 물음도 아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에서 거짓 것을 전하는 자들을 지적하였는데, 이들은 데살로니가교회, 곧 바울에 의해 세워진 정통 교회에 나타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성경에 대하여 ‘이단’과 ‘정통’이란 문제로 접근하여 자신들은 완전한 것처럼 포장하고, 다른 곳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취급하는 이러한 몰이해는 주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단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원리를 놓고 잘잘못을 논하지 않고 사람들의 어떤 행위의 문제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고자 함이 그러하다. 행위의 문제를 갖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눈에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고,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심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임을 깨닫지 못한 무지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SOSTV 생애의 빛]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사탄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안다. 사탄은 진리를 정교하게 모방한 뒤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함으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고 들어간다. 왜냐하면 감정에 동화된 사람은 분별력을 잃게 되고 참된 진리와 모방된 진리를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을 추스르고 냉철한 지성을 활용하여 진리가 무엇인지 식별해야겠다.

‘누가 아무렇게나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3)’

여기 살후 2장에 나온 배도자는 누구인가? 이 배도의 세력은 한국 기독교회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오류와 불법으로 물들인 로마교황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살후 2장에 기록된 배도자(로마교황권)에 대한 예언이 다니엘서 7장에 예언되어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위 데살로니가 후서와 다니엘서의 배도자에 대한 예언이 로마교황권과 얼마나 잘 일치하는지 그들의 자체 증언을 통해 하나씩 살펴보자.

A)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3)’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단7:25)’ ‘교황은 너무 존엄하고 높기 때문에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육신의 베일 속에 감추어진 예수그리스도 자신이다(Prompta Bibliotheca, vol, pp, 25, 29)’

B)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살후 2:3)’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단 7:25)’ ‘법왕의 권세는 사람의 권세가 아니요 하나님의 권세이므로 그는 하나님의 법도 수정할 수 있다(Lueius Ferraris, Prompta Bibliotheca Vol, lv)’ ‘왜 카톨릭 교회는 주의 날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켰는가? 그리스도께서 교황에게 주신 묶거나 푸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교회는 주의 날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카톨릭 교회의 1958년도 판 교리문답집 p.243)’

하나님과 자기가 동등이라고 참람되이 주장하며 그 결과로 변경될 수 없는 하나님의 법 십계명을 대담하게 뜯어고친 세력이 바로 살후 2장의 불법의 사람이며 단 7장의 때와 법을 변개시킨 배도자 로마교황권이다. 사탄은 이 성경의 진리를 가리기 위해 ‘배도자, 구원자, 멸망자’라는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현재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냉철한 지성을 가지고 정교하게 모방된 가짜 진리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먼저 진리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분 안에서 믿는 자들이 구원자가 될 수 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분 안에서 또한 믿었으니 너희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느니라(엡 1:13, kjv)’ 구원의 복음을 다양하게 말하고 있다. 영접식 기도를 하는 곳도 있고,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곳들도 있다.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곳도 있다.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한 복음일 것이다.

‘그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을 받았느니라. 이는 내가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나니, 곧 성경 기록들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 기록들대로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셔서(고전 15:2~4)’라는 복음으로 거듭난 자가 바울과 같은 구원자일 것이다. 배도(背道)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나 하나님과 등을 진자이다. 배도하는 자들의 말씀을 듣고 인간을 교주로 하여 따르는 자들이 멸망하는 자들이다.

일부분에서는 교황을 말하며 세계정부주의 자들이라고도 말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길들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반석으로 한 교회의 지체들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나 성령의 사역에 반기를 든 자들이다. 오늘날 한 교회 안에 내부의 갈등으로 고민을 하는 교회들이 있을 것이다. 둘 중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배도하는 자일 것이다. 멸망하는 자들은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에 자신을 높이는 자로서, 그가 하나님 같이 자신을 보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전 2:4)’

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는지 모를 리가 없다. 인간이 사람을 우상화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 앉혀 놓고 위로를 받고 있다. 불교는 석가를 유교는 공자를 인도는 간디를 남아공은 만델라를 통하여 위안을 받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받았기에 마음의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려놓았다고 앉아 있는 자나 올려놓은 자가 있다면, 거기서부터 마음의 진노의 싹은 시작 될 것이다.

오늘날 사람을 하나님처럼 바라보다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거짓말 하는 자들은 마귀가 아버지이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인간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거짓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줄 알면서도 다른 복음 증거 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탐심 때문에 진리를 알고 마귀와 손을 잡는 자들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알고도 자신의 영욕으로 인하여 마귀들과 타협했다. 그리고 양심에 걸려 자살하고 말았다. 이것이 거짓이며 멸망의 아들이며 배도의 모범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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