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31. 뱀인 바리새인이(마 23:33) 돈을 좋아했고(눅 16:14),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다(딤전 6:10). 돈을 좋아하는 목사와 돈을 주고받고 파는 교단은 이단인가, 정통인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우선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빼놓고는 다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고 개연성 정도로 보게 된다. 간보고 난 뒤 판단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나오게 마련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하여 ‘그 교단은 명백히 교리적으로 이단이다’고 성토해놓고서는 경제적인 도움이나 인맥 관계로 얽힌 경우 속에 들어가게 되면 얼른 ‘건전한 교리 바탕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커가는 형제 교단이다’고 찬미하는 경우가 숱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판단이란 항상 현 자신의 조직에 어떤 유리한 결과를 제공하게 되느냐 여부에 따라서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달라진다. 일관성 있으면서 항구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판단은 오직 ‘판단하는 나 자신도 언제라도 이단적으로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는 사실을 항시 인정하는 그 순간뿐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인정하는 유일한 정통이란 자신이 죄인의 괴수임을 늘 고백하는 자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모데전서 1:15~16)’

왜 이런 자가 정통이 되느냐 하면 자신의 처해 있는 자리를 자기 소유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소유당한 자들의 특징은 결코 그 소유 당함 자체를 형체화한다든지 형식화한다든지 제도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따로 형식화하게 되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가 그들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집단이나 그 민족이나 그 나라 자체를 위하여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일을 해석한 것이 정작 하나님 자체에 대한 오해로 이어져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오늘날 교인들이 자기 존재가 속해 있는 자기 가정이나 지역이나 성씨나 교회나 교단이나 종교나 국가나 직장이나 학교나 단체를 위하여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전제로 해서 기도하는 경향과 같은 취지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 10장 34~39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이런 말씀을 하시고 더 나아가서 이 말씀에 입각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상태에서 직접 구원 작업을 시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제발 스스로 깰 수 없는 자기 긍정성을 예수님에 의해서 무참하게 다 깨어지도록 간곡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제발 저의 모든 면에 이미 태어 날 때부터 이단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제가 제대로 깨닫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말이다. 이런 자만이 진정 정통적인 성도계열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 정당성과 자기 옳음과 자기 정통성 확보를 위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도용하는 죄까지 추가하게 된다. 성령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이 사실을 안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런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는 와중에서 진리가 전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십자가 사건에 동참된 자의 자기 파괴와 자기 폐허 가운데 비로소 진리는 때 묻지 않는 상태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모든 이가 다 한 통속으로서 아담의 육신을 내려 받은 한, 근본적으로 이단일 수밖에 없으며, 바로 매사에 이 사실에 근거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들만이 정통이다.

[SOSTV 생애의 빛]

예수께서는 당대의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성직자들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의 아비는 마귀니라’라는 말씀을 서슴지 않고 행하셨다. 현대적 시각으로 이 현상을 재해석한다면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한 시골 청년이 한기총을 찾아가서 목사들을 향해 ‘마귀의 자식들아’라고 외친 것이나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인가?

문제는 이런 똑같은 종교계의 현상이 이 시대에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종교계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질타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다. 왜 그러한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보이며, 배웠다고 하는 신학 석박사들에게는 진리가 보이지 않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말씀을 배척하면서 돈과 명예만을 사랑하는 행태가 오늘날 종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보이고 있으며 이들이 똑같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뱀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교회 안에 지도자로 있지만, 목사의 명칭을 얻고 화려한 가운을 입고 있지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진리보다 명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실제로 목사가 아니라 뱀의 후손이다. 그렇다! 성경은 뱀의 후손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마치 옛날 우리 조상들의 초가나 기와집 나무 기둥에 구렁이가 끼고 들어앉아 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집 안에 뱀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치셨을까? 첫째로 그들은 예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로 그들은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날도 똑같다. 수많은 기독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그들은 예언을 모름으로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 초림의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현상이 예수님 재림 직전에 펼쳐지고 있다. 정말 자다가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진리로 사모할 때가 바로 이때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마지막 때 주님께서 거짓선지자들의 출현에 대해서 수차례 경고하셨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때 진리의 편(시온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14만 4000)이 바벨론을 향해 거기서 나오라고 크게 외칠 것인데 그것을 사탄이 모방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시온산에 있는 14만 4000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예수의 피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는 자들이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마지막 때 시온산에 있는 14만 4000인은 바로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높이는 자들이다. 그들이 마지막 때 바벨론을 향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라고 외치는 자들인 것이다. 사탄이 이것을 교묘히 모방하여 ‘아무개가 보혜사이다’ ‘아무개가 책을 받아 먹었다’ ‘아무개가 이긴 자다’라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정말로 마지막 사탄의 기만이 절정인 때에 우리가 살고 있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주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셨지만 이는 사단의 자식이란 의미를 우회적으로 하신 표현이지 그들이 실제 뱀이란 뜻에서 하신 말씀은 아니다. 따라서 ‘뱀인 바리새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의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또 그들이 돈을 좋아했다는 지적을 하신 것도 맞지만 그 부분 역시 그들의 세속적 사상을 응축한 표현이지 단순히 돈을 좋아했다는 사실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도 그러하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한 바 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5절부터 8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보도한 바 있다. 모두가 같은 의미요 같은 개념의 교훈들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향이며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도 이와 같은 성향과 본성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때문에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하였다. 이런 질문을 누가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역시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만일 그가 누구이든 이에 대하여 자신을 완전하다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자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아울러 이는 성도들이 일생을 두고 싸워가야 하는 과제이다. 즉 세상 것, 돈이나 육신의 것을 위함이 아니라 영생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진리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물론 돈을 좋아하는 목사가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는 없다. 역시 돈을 주고 성직을 매매하는 경우가 있다면 마땅히 지적을 받아야만 하고 하나님의 책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이단인가, 정통인가?’라고 묻는 물음은 온당치 못하다. 이는 이단이나 정통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단’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선택하다’, ‘더 좋아한다’는 뜻을 가진 ‘하이레오(αἵρέω)에서 파생된 ’하이레시스(αἵρεσις)다. 이 단어는 주로 어떤 단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데, 특히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정통 교리에서 빗나간 사람이나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돈을 사랑한다는 문제와는 본질이 다르다.

특히 어떤 교단이나 교파라 하여 모두가 일색으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어떤 단체라 하여 모두가 세상을 사랑치 않는 의인들만 모인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런 문제로 이단이나 정통을 논하는 것 자체가 성경을 전혀 모르고 왜곡되게 적용시키는 이단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성경을 왜곡되게 이해하면서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짐승보다 더욱 간교하다(창 3:1, kjv).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간교하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만약 예배당이 하나님의 집이며 성전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돈을 무지한 백성으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뱀처럼 간교한 목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목적으로 하는 목회는 시작부터 잘못 되었기 때문에 목사나 목자라고 할 수 없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만 지키면 되는 신앙일 것이다.

바리세인들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이방인들이 지킬 수 없다.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표현이라면 정말 잘못 된 것이다. 사람은 돈을 좋아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은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창 3:4)’라는 말씀처럼 최선을 다하여 정신적, 육체적 노농을 지불하여 얻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무지하고 선한 선민들의 주머니를 착취하는 교단이나 목회자, 또는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첫째가 자원하는 마음이다. 둘째가 꾸준히 모임을 갖는 것이다. 셋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행 2:44~47). 돈을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거둬들여 어느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이다.

성직자라고 하는 목사는 퇴직이 없다.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퇴직이라는 명분으로 돈이 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몇 십억 원씩 주고받는 것이라면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단 교단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권위와 권력과 명분이 앞서 있기 때문에 각자 교단을 만든 것이다. 사심이 없다면 구차하게 교단을 형성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 받은 하나님의 ‘파당’이다. 마귀의 파당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예수님 안에 한 몸 한 성령이라는 것이다. 주도 한 분이요 믿음도 하나라는 것이다(엡 4:4~6).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교파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을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돈 보다 진리가 앞서 있다면 돈으로 교파를 거래 하지도 않을 것이며 교파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돈을 좋아 할 것이다. 돈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유혹하여 돈을 바라는 것은 범죄이다. 목사도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목사는 구약의 레위지파가 아니다. 당연히 구약의 제사장도 아니다.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느니라(딤후 1:11)’ 목사는 생명을 전하는 전도자이지 생명을 담보로 부를 축적(蓄積)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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