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쌓인 한무숙문학관 ⓒ천지일보(뉴스천지)


한무숙문학관


한 사람과 어떤 사건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다룬 영화가 연말연시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난한 것이 한(恨)이 되어서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던 세무 변호사가, 고시공부 하던 시절 따뜻한 정(情)을 느낀 국밥집 모자(母子)의 기막힌 상황을 알게 된 후 그 집 아들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내용의 영화 말이다.

자신이 승승장구하던 사이 어느 한쪽에서는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불법감금을 당한 상황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고 있는 등 자신이 사는 세상이 결코 ‘안녕하지 못 한’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만남은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것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와 만났다. 올해는 특히 청마(靑馬)의 해라고 하니, 푸른 꿈(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해가 될 것이다. 만남이란 가능성이 있기에 좋다.

새로운 만남에 대해 상념하다 보니 올해 1월 30일로 서거 21주기를 맞는 한국 문학계의 대모(代母) 향정(香庭) 한무숙(韓戊淑) 소설가의 장편소설 <만남>이 생각난다. 더욱이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이 최근 체코에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은 뒤여서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한무숙문학관을 찾았다. 마침 눈이 내려 기와집의 고풍스러움이 한결 더했다.

한무숙 소설가의 장남인 김호기 관장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Kawabata Yasnari) 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와서 차를 마신 곳에서 특별한 커피를 대접 받으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병약한 몸에 엄격한 사대부가의 며느리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몹시도 힘이 들었지만, 완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 집안일에 충실하면서도 틈틈이 소설을 써서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완전한 여성이라는 면에서는 그녀가 받은 신사임당상을 들 수 있겠다. 거기에 훌륭한 소설가로서의 면모는 데뷔작인 일본어로 쓴 장편 <등불 드는 여인>을 비롯하여 <역사는 흐른다> <만남>을 들 수 있겠다. <역사는 흐른다>는 하와이대학 출판사에서 영역되어 출판되었고, <만남>은 폴란드, 미국, 프랑스, 체코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기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목(校牧, 100년을 훌쩍 넘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미션 스쿨로 목사님이 계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인간은 다섯 가지 만남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먼저는 부모와의 만남이고, 친구(동성, 이성), 배우자, 그리고 맨 끝에 종교지도자와의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님의 말씀이니 다섯 번째를 그렇게 했겠지만 20여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그렇다.

부모와의 만남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전생에서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을 자식으로 만난다고 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문서 없는 종노릇’을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다. 이토록 어마어마하고 값진 만남이기에 부모와의 만남이 인간의 중요한 만남 중 1번이다.

‘품안의 자식’라고 어느 정도 손발에 힘이 생기면 시선을 밖으로 돌려 친구를 찾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친구들과 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어울리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행성(行星)에서 온 것처럼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남녀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동성(同性)의 친구와 이성(異性)의 친구가 다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과연 이성(異性)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논외에 두기로 한다. 그 답은 생각하기에 따라 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친구(벗,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가 주는 영향이나 깨우침은 그 출신 별(화성과 금성)의 거리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그러니 이 둘이 인간의 중요한 만남 중 2, 3번이 된다.

배우자와의 만남 역시 중요하다. 아니 이것은 부모와의 만남처럼 중요하다.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라는 말에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결혼은 혼자로서의 삶이 죽는 것이고 둘로서의 삶이 태어나는 일이다( 물론 이 둘의 만남으로 인해 수많은 새로운 만남도 생긴다). 결혼이 새로운 탄생이기에 배우자와의 만남은 부모와의 만남과 같이 중요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결혼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선택을 두고 현실에서도 또 현실을 모방했다는 드라마에서도 많은 일들이 얽히고설키게 된다. 배우자와의 만남은 인간의 중요한 만남 중 4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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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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